[인터뷰]김현섭 대신자산운용 헤지펀드사업단 롱숏전략운용본부 본부장

무림에 고수가 돌아왔다. '헤지펀드 매니저'란 타이틀을 달고. 김현섭 대신자산운용 헤지펀드 본부장(43·사진) 얘기다.
그는 한국 주식시장에 5년 이상 발을 담구고 투자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재야 고수'다. 2000년부터 전문 주식투자자로 증권업계에 데뷔, 다섯 차례 실전투자대회 1등을 휩쓸며 전설이 됐다. 한화증권, 피데스투자자문, 플러스자산운용, 대우증권 등 제도권에 잠시 머물기도 했지만 30대의 대부분을 재야에서 보냈다.
주식 투자로만 자산가의 반열에 올라 모든 주식투자자가 꿈꾸는 '경제적 자유'를 얻었지만 불혹의 나이를 넘긴 시점에 제도권으로 돌아왔다. 적은 월급과 밤늦게 이어지는 야근, 무거운 책임을 감수하고 말이다.
"지금 뭔가 하지 않으면 평생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주식 투자는 제가 가진 재주니까 이 재능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온실 밖에서 터득한 '야생의 경쟁력'=제도권 펀드매니저의 하루는 메신저 온(ON)과 함께 시작된다. 로그인과 함께 애널리스트와 브로커의 리포트, 정보지, 멘트 등이 쏟아진다. 기업에 전화해 탐방 스케줄을 잡고 나간다. 때로는 기업체 담당자를 회사로 부를 수도 있다.
펀드 수익률의 기준은 벤치마크, 즉 코스피 지수다. 코스피가 하락해도 지수를 이기면 마음은 그리 불편하지 않다. 펀드 수익률이 마이너스 3%라도 같은 기간 코스피 수익률이 마이너스 5%라면 시장을 '이긴 것'이 된다.
하지만 이 같은 기준은 김 본부장에겐 의미가 없다. 자기 돈으로 베팅해온 실전 투자자에게 마이너스는 그냥 손실일 뿐이다. 주식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반드시 수익을 내야했다. 제도권 펀드매니저가 지원받는 리포트, 정보, 기업 탐방 없이 맨손으로 말이다.
"제가 다른 펀드매니저와 다른 점은 결국 온실 밖에서 주식을 했다는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주식을 하면서 거의 잃어본 적이 없습니다. 돈을 벌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 때문이었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주식을 발굴하고 매매 원칙을 세우며 '야생의 경쟁력'을 길렀습니다"
그가 대신자산운용에서 에버그린 롱숏펀드 운용을 시작한 첫 날은 9월30일이었다. 전일 코스피 지수는 2011.80포인트로 마감했다. 외국인의 순매수 덕에 코스피는 지난 3개월간 이미 8.0% 오른 시점이었다. 이후 8주간은 코스피가 횡보하며 0.5% 하락했지만 그가 운용하는 펀드는 6%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6%의 수익률이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가 설정액의 절반만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수가 많이 오른 상태에서 김 본부장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현금비중을 절반 정도 남겨놓고 나머지 절반으로만 6%의 펀드 수익률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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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를 위해 태어난 한국형 '제시 리버모어'="한국 증시는 지금 상단이 막혀 있습니다. 구조적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고도 성장을 누렸던 시절의 근간이 달라졌습니다. 지금이 대세 상승을 외칠 때는 아닌 이유입니다"
시장을 보는 시각은 보수적이다. 장기 박스권 횡보를 전망한다. 시장과 딱 붙어 움직이는 주식형 펀드 전반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이다. 하지만 시장이 어떻게 변하든 늘 수익을 냈던 그에게는 박스권이든 대세 상승장이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어쨌든 돈을 버는 것"이다.
그는 재야에서 시장의 흐름을 읽는 동물적 감각을 배웠다. 지금은 일반 명사가 된 '상한가 매매'도 그가 개발했다. 상한가에 주식을 사서 상한가가 계속 이어지면 보유하고 상한가가 깨지면 매도해 급등주의 수익을 누리는 전략이다. 그는 상한가 매매에 필수적인 재료를 발견해 이 재료가 주가를 얼마 올릴 수 있을지 판단하는 데 천부적 자질을 보였다.
될 성 부른 주식을 골라내는 감각은 롱&숏 전략(오를 주식을 사고 내릴 주식을 빌려 파는 전략)으로 연결됐고 재료 매매로 기른 실력은 이벤트 드리븐 전략(증자, 인수합병, 법정관리 등 이벤트에 베팅하는 전략)의 포석이 됐다.
"제도권에서 기업분석을 배우며 펀더멘탈(실적)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주가의 재료라는 걸 알게 됐죠. 지금은 초대형주만 매매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종목이지만 적중률 높은 종목을 골라 이상적인 수익률 그래프를 그려 나가는 거죠"
그의 명성 덕분에 에버그린 롱숏펀드는 헤지펀드 업계 최초로 수탁고 1000억원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스스로 돈을 벌어 실력을 입증한 헤지펀드 매니저의 존재가 그 자체로 '보증 수표'가 됐다.
"한국형 헤지펀드 시장이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데 한 몫 하고 싶습니다. 제가 꾸린 팀은 이미 국내 최강의 헤지펀드 팀이라고 자부합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헤지펀드 매니저로 성장해 조만간 '1조 헤지펀드'를 선보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