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재무학]<52>15%라는 근거 없는 숫자가 비이성적 투자 초래한다

"구매 제한이 있으면 사람들은 (필요이상으로) 과다 구매한다."
브라이언 완싱크(Brian Wansink) 코넬(Cornell) 대학 마케팅 교수는 그의 베스트셀러 『나는 왜 과식하는가(Mindless Eating)』에서 사람들의 비이성적 소비행동(consumer behavior)과 식습관(eating habit)을 인간의 심리 측면에서 매우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한 예로, 마트에서 식료품 구매 수량에 제한을 두면 필요이상으로 더 많이 구매하게 된다는 것이다.
완싱크 교수는 근거없는 숫자(=구매수량 제한)에 영향 받아 사람들이 비이성적으로 사재기에 나서는 모습을 다음과 같은 실험을 통해 보여줬다.
그는 한 마트에서 평소 1천원이던 스프 통조림 한통을 900원으로 할인하는 행사를 벌였다. 그리고 이 할인행사에 ▷구매수량에 제한을 두지 않을 때, ▷최대 4통의 구매 제한을 둘 때, ▷최대 12통의 구매 제한을 둘 때 등으로 구매 수량 제한을 달리하고 각각의 경우 소비자들의 구매행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관찰했다.
먼저, 구매수량에 전혀 제한이 없을 때 소비자들은 1인당 평균 3.3통의 스프 통조림을 구매했고, 총 73통의 스프 통조림이 마트에서 팔렸다.
두번째로 최대 4통의 구매 제한을 뒀더니, 소비자들은 구매수량 제한이 없을 때보다 좀 더 많은 스프 통조림을 구매했다. 이 경우 소비자들은 평균 3.5통을 샀고, 마트에선 총 106통이 판매됐다.
마지막으로 구매 제한을 최대 12통으로 늘렸더니, 소비자들은 구매 제한이 없을 때보다 2배가 넘는 스프를 사들였다. 이 때 소비자들은 1인당 평균 7통을 구매했고, 마트에선 총 188통이 팔렸다.
▷구매수량 제한을 두지 않을 때: 1인당 평균 3.3통 구매, 총 73통 판매
▷최대 4통의 구매 제한을 둘 때: 1인당 평균 3.5통 구매, 총 106통 판매
▷최대 12통으로 구매 제한을 늘렸을 때: 1인당 평균 7통 구매, 총 188통 판매
이 실험에서 소비자들은 구매수량 제한이라는 아무런 근거 없는 숫자(4통 혹은 12통)에 매달려 구매 행태를 달리했을 뿐만 아니라, 구매수량 제한을 늘릴수록 소비도 따라 늘리는 도저히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소비 행동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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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아무런 근거 없는 숫자에 영향을 받아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심리학에선앵커링(anchoring)이라 부른다.
그런데 앵커링의 오류는 주식투자의 세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가격제한폭이다.
한국 증시에서 가격제한폭은 1995년 3월∼1998년 12월사이 6%→8%→12%→15%로 확대되었고 향후 점진적으로 폐지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변경이 없이 유지되고 있다.
재무학의 여러 시장미세분석(market microstructure) 연구들은 가격제한폭 제도가 주가 변동의 폭을 인위적으로 제한해 새로운 정보에 대한 주가의 반응을 지연시키고 결과적으로 균형가격을 제때 찾아가지 못해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하고 있다.
행동재무학 측면에서 살펴보면, 위의 완싱크 교수의 구매 수량 제한이비이성적 소비(mindless consuming)를 초래한 것처럼 가격제한폭은비이성적 투자(mindless investing)를 부추길 수 있다.
머니투데이방송(MTN)의 유일한 기자는 그의 책『누가 주식시장을 죽이는가?』에서 가격제한폭이 비이성적 투자를 부추긴다며 한국 주식시장에서 가장 먼저 삭제해야 할 단어라고 역설하고 있다.
유 기자는 가격제한폭이 초래하는 여러 비이성적 투자 행위를 언급하고 있는데, 특히 가격 제한 때문에 이벤트가 발생한 당일의 거래량은 감소하고 오히려 그 다음날 거래가 폭증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주가가 상한가(하한가)에 근접하면 매수(매도) 주문이 증가하며 주가가 자석처럼 상한가(하한가)에 달라붙는 ‘자석효과’라는 비이성적 매매 행태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가격제한폭이 투자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데 있다"며, ‘묻지마 투자’, ‘폭탄 돌리기’, ‘테마주, 작전주 투자 등’ 불합리하고 비이성적 투자 행태가 만연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가격제한폭 제도에 기인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위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가격제한폭이 주식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앵커링을 증폭시켜 비이성적으로 투자하게끔 부추긴다는 얘기로 요약할 수 있다.
혹자는 인간이 의미없는 숫자에 영향을 받아(=앵커링에 얽매여) 과소비(mindless consuming)나 어리석은 투자(mindless investing) 같은 비이성적 행동을 한다는 점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지 모른다.
그러나 슬프게도 많은 행동재무학 연구는 주식시장에서 인간의 이성(혹은 지식)이 행동으로 그대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