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디렉터]

필립 테틀락(Philip Tetlock) 버클리대 심리학교수는 '전문가의 정치적 판단(Expert Political Judgment)'이란 저서에서 "특정 문제해결에 있어서 전문가들의 분석 자체보다는 그 문제에 대한 그들의 접근 방식이 더욱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에 대한 단일하고 통일된 견해를 가진 사람일수록 판단력이 우수하지만 오히려 반대로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도 컸다. 옳았던 사람도 장기적으로 늘 옳지는 않았다.
테틀락 교수는 이같은 사람들을 완고한 방어벽을 갖춘 '고슴도치'라고 규정했다. 고슴도치는 세상이 아무리 복잡하건 관계없이 모든 과제와 딜레마를 단순한 고슴도치의 콘셉트로 축약시킨다.
이들은 고도의 직관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콘셉트에 부합하지 않는 현상에는 관심이 없으며 심지어 배척하기도 한다. 설익은 직관은 위험할 수 있고 무르익은 직관이라도 항상 옳기는 어렵다.
반대로 그가 '여우'라고 규정한 사람들은 다양한 절충주의적 상황과 의견에서 결론을 이끌어 내고 모호성이나 모순, 불확실성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여우는 여러가지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며 세상의 복잡한 면면을 두루 살핀다. 합리적이고 원만하며 사교적인 여우는 상황에 따른 변화를 받아들이며 대처능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내면의 부드러움 속에서 원만한 의사소통을 이루는데 능하다. 여우는 위대한 예측가는 못되지만 고슴도치에 비해 평균적으로 성공적이고 특정 분야에서는 더더욱 그러한데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때문이다.
여우형과 고슴도치형은 우리에게 모두 필요하다. 기업가 정신을 위해서는 특히 고슴도치 같은 한결같음과 우직함이 요구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중앙은행 총재와 같이 불확실성을 다루는 직업을 생각해본다면 여우적인 유연함이 필요한 자질이 아닐까 한다.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이나 스탠리 피셔 현 연준 부의장 지명자는 여우형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모호한 선언과 불명확한 태도는 경제구조의 끊임없는 변화와 복잡계 특유의 종합 예술성을 반영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자본시장 참여자들이 가장 증오하는 '불확실성'에 대해 그린스펀은 "불확실성이야말로 통화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일 뿐 아니라 전망 그 자체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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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피셔는 명시적인 포워드 가이던스에 부정적 견해를 펼쳤던 인물이다. 그는 "1년 뒤에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너무 정확하게 예상해 통화정책을 펼치려 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재임기간 중 매우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펼치면서 기준금리에 변화를 줬다.
여우는 모호한 말과는 반대로 대응이 필요한 행동에 있어서는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행했다. 이는 이들이 미래의 예측보다는 사태에 대한 대응에 더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예측이 맞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인간 지성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예측의 정확도에는 불완전성이 존재하므로 예측력을 극단적으로 높이는데 경주하기 보다는 신속 정확한 대응책 마련에 집중하는 것이 통화당국자로서 파국을 막는 차선책이다.
이주열 신임 한은 총재는 고슴도치보다는 여우에 가까운 인물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과거 그와 같이 일했던 정부 관료들은 하나같이 그가 합리적인 인물이며 금융위기 때 정부와 한은 간의 의사소통을 맡은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원만하고 사교적인 성품의 결과다. 과거 2006년과 같은 유동성 과잉 시기에는 지준율 인상, 총액한도대출 축소 등의 긴축조치를, 반대로 금융위기 시에는 은행자본확충펀드같은 시장 지원책을 주도했다. 취임 전 언론 노출이나 인사청문회에서도 말을 아끼는 모습은 개인 성향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신중함을 나타낸다.
이주열 총재는 경기 상황에 맞는 적절한 통화정책을 추구하는 합리주의자다. 다만 개선세를 보이는 현 경제상황과 그의 출신(한은 조사국), 금통위 발언, 인사청문회 답변 내용 등으로 볼 때 현재로서는 다소 매파에 가깝다.
당장 4월 금통위 기자회견과 G20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향후 기준금리의 방향성에 대해 확실히 위쪽이며 필요 시 선제적인 대응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이로 인해 채권시장에서는 일부 남아있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후퇴했다.
현재 금통위원의 성향은 임승태 위원을 제외하고는 매파와 비둘기파가 3대 3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중수 전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만연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색채가 강했으며 금통위의 전체적인 생각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통화정책 예상이 매우 어려웠고 시장과의 소통에 혼선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은이 커뮤니케이션에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그 노력이 무용지물이 되기도 했다. 중앙은행과 시장 모두 손해다.
이주열 총재는 금통위의 합의된 결론에 대해 정확하고 간결한 어휘를 구사하고 있다. 시장에 불확실한 해석의 여지가 줄어들었으며 예측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는 금통위의 대변자적 입장에서 개인의견보다는 금통위의 합의된 결론에 대한 시그널링에 주력할 것이다.
시그널은 선진국과 같이 명확한 통화정책의 미래 경로를 제공하는 포워드 가이던스 같은 방식은 아닐 것이다. 기준금리 변경 2~3개월 전에 시그널은 줄 것이나 반년 이상의 긴 시간이 남은 시점에서 불확실성을 감내하며 미리 통화정책의 변경 시점과 경로를 설파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주열 총재는 취임 3일 만에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한은 직원들 사이에서도 조직개편의 강도가 예상보다 높다는 후문이다. 말은 조심스럽게 하지만 생각하는 바를 실행할 때는 망설임 없이 행하는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입이 무거운 사람은 행동이 진중하다.
이주열 총재의 성향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처한 상황에 따라 판단이 선다면 행동에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어떠한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경기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가공무역을 통해 재수출되는 물량을 고려할 경우 국내 부가가치에 최종적으로 기여하는 비중은 여전히 미국과 유럽이 중국 및 신흥국 보다 크다.
3월 아파트 가격은 정부의 임대차 선진화 방안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꾸준히 이어진다면 올해 4분기 중에 총재는 기준금리 변화에 대한 시그널을 줄 수 있고 생각한다.
더불어서 금리 변동성도 높아질 가능성이 있으니 주의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금통위가 보다 긴장감 있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