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두고 일진일퇴의 공방을 이어가는 가운데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 지분을 또 추가 매수했다. 국민연금이 합병안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지분을 확대한 배경을 두고 분분한 해석이 나온다.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달 4일부터 30일까지삼성물산(283,500원 ▼9,500 -3.24%)보통주 271만440주, 우선주 4290주를 추가 매수했다. 보통주 기준으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10.15%(1585만861주)에서 11.88%(1856만1301주)로 늘었다.
다만 오는 16일 삼성물산 합병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주주 지분은 지난달 11일 매입분까지 인정되는 만큼 국민연금이 실제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 지분은 11.22%(1751만6490주) 수준으로 추산된다.
시장에서는 일단 긍정적인 해석이 우세하다. 국민연금은 삼성그룹의 합병 발표 이후 삼성물산 지분을 우선주까지 포함해 300만주 가까이 추가 매수했다. 주당 매수 단가를 6만5000원으로 가정하면 추가 매수에 2000억원가량을 들인 셈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합병 발표 이후 삼성물산 주가가 최근 3년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며 "합병이 무산될 경우 주가 하락으로 손실을 볼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추가 매수만 놓고 보면 국민연금이 반대 의견을 내기 어렵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추가 지분 매수가 삼성그룹 경영진과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이뤄졌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등과 삼성 경영진을 만나 합병법인의 미래가치와 주주가치를 올릴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국민연금은 이 자리에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합병비율의 불공정성을 문제 삼은 것과 달리 합병의 시너지 효과와 합병 후 주주가치 제고 방안 등을 검토해 찬반 의사를 결정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이 지난달 30일 긴급하게 제일모직 IR(기업설명회)을 꾸려 △배당 상향 △거버넌스 위원회 신설 △CSR 위원회 신설 등 주주가치 제고 계획을 밝힌 게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단순히 추가 지분 매입만으로 국민연금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이 의결권 자문을 받는 서스틴베스트와 미국의 의결권 자문회사인 글래스루이스가 이번 합병안에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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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회사로 국민연금과 자문 계약을 맺고 있는 ISS는 오는 4일 새벽 의견을 낼 예정이다. ISS마저 반대 의견을 제시한다면 국민연금의 입지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할 기구도 변수로 꼽힌다. 국민연금은 기업의 주총 안건과 관련, 대부분의 의결권은 투자를 담당하는 기금운용본부 내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하지만 민감한 사안이라고 판단할 경우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 결정을 요청한다.
의결권위는 정부, 사용자단체, 근로자단체, 연구기관 등에서 추천하는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사실상의 외부 위원회로 기금운용과 관련된 인사의 참여가 배제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기금운용본부와 견해차를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의결권위는 지난달 말 SK와 SK C&C 합병안을 두고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ISS와 국내 자문기구인 기업지배구조연구원이 찬성 의견을 제시한 가운데 이뤄졌다.
국민연금은 결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다각적으로 심사숙고해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전례를 감안하면 삼성물산 주총 직전인 오는 15, 16일쯤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을 추가 매수한 뒤 자본시장법 147조와 시행령 154조의 '5%룰 예외조항'에 따라 지분 신고를 늦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는 지분 변동이 있을 경우 5영입일 안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지만 국민연금 등 일부 기관투자자는 해당 분기의 다음달 10일까지만 신고하면 된다. 이를테면 2분기 중 지분 변동이 있을 경우 7월10일까지만 신고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