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고르기]정부와 소비자의 희생과 위험을 담보로 한 금융기관의 배불리기 행태

1년 이상의 준비를 거쳐 14일 출시된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의 선점을 위한 금융기관의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감독 당국과 언론으로부터 연일 제기되는 불완전 판매나 손실 위험에 대한 경고는 아랑곳 없다.
금융기관의 고급 인력이 길거리에 나와 캠페인 하는 후진적 행태는 물론이고, 대대적 언론 광고에다 자동차·골드바·여행권 등 미끼성 경품이 난무한다. 심지어 5%나 되는 단기 고금리 상품 편입 내지 수수료 일부 면제 등 제살 까먹기식의 판촉 경쟁이 무차별적으로 벌어지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비과세 혜택을 받으려면 5년 동안 유지해야 하므로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첫해 수수료 정도는 전부 마케팅 비용으로 쏟아부어도 나머지 4년은 가만히 앉아서 시간만 지나면 수익을 챙길 수 있다.
더구나 ISA는 자사 상품을 직접 편입할 수 없으므로 자산 운용에 따른 금융기관의 손실 위험도 없고 대출 편입이 안되므로 대출 심사나 부실 여부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장점들이 모든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ISA 유치에 올인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그런데 어떤 금융 상품이든지 한쪽(금융기관)에는 위험이 없는 안전한 수익을 보장하면서 다른 한쪽(소비자)에도 무위험 수익을 보장하는 경우는 없다. 대표적인 예가 펀드와 같은 금융 상품이다. 반대 경우는 금융기관이 운용에 따른 위험을 부담하고 소비자에게 무위험 수익(이자)을 주는 예적금이 대표적이다.
ISA는 펀드와 달리 일부 무위험 수익 즉, 비과세혜택을 소비자에게 부여하여 상품성을 높였지만 5년간 200만원을 초과하는 기대수익을 가진 소비자들은 운용에 따른 손실위험을 부담해야만 한다.
5년간 200만원은 2000만원 가입자가 매년 연 2%의 수익을 달성할 때 수준이다. 그런데 예적금이나 국공채 같은 안전자산의 연수익률이 연1.5% 안팎에서 형성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금융기관이 5년간 수수료를 한푼도 안가져가도 달성하기 어렵다. 이는 ISA가 구조적으로 위험자산 편입이 불가피한 현실을 입증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감독당국과 금융기관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 불완전판매의 차단이다. 즉 전적으로 소비자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운용 위험을 부담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고 철저하게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은행·증권사에 친인척이나 지인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싶다. 형식적으로는 불완전판매의 소지를 없애겠지만 금융기관 임직원의 권유에 못 이겨 마지 못해 가입하는 경우가 상당 부분 발생하는 건 피할 수 없다.
독자들의 PICK!
ISA는 서민용 비과세 재산형성 상품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운용손실에 따르는 위험을 비자발적으로 감수하게 만드는 우리나라 금융환경이 너무도 후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국 비과세에 따른 정부 재정 희생과 소비자의 손실 위험이라는 두 가지를 담보로 금융기관에게 안정적인 이익을 제공하는 금융기관 배불리기 상품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현재 금융산업은 글로벌 저성장·저금리로 성장동력을 잃어 버린 상태이며 핀테크 혁신 기업들의 거센 도전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고질적인 고임금·저생산성의 비효율적 구조를 탈출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에서 자체적인 혁신과 창의적 노력은 보이지 않고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안전 영업에 모든 은행과 증권사가 몰두하는 모습이 애처로울 정도다.
게다가 과거를 돌이켜봐도 금융기관들이 동시에 공동으로 대규모 판촉 활동을 벌인 상품으로 성공한 경우가 많지 않다. 대규모 마케팅 특성상 권유에 의한 비자발적 투자가 대부분이어서 투자 손실로 인한 아픔과 갈등이 항상 뒤따랐다.
최근의 홍콩H지수 연계 ELS 투자자의 평가손실 사례로부터 비과세상품인 브라질 국채 투자 손실, 90년대 선풍적인 투자 열풍을 일으켰던 뮤츄얼펀드의 허상, 수많은 기업들을 부도로 몰아 갔던 환투기 상품 키코(KIKO) 등등 모두 최종적인 피해는 항상 금융 약자인 소비자의 몫이었다.
우연인지 몰라도 앞의 사례들은 모두 해외 금융 선진국들이 만들어 놓은 상품을 가져온 공통점이 있다. ISA도 1999년에 영국이 최초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ISA는 외국 사례들과 달리 서민용 상품이라는 점이 다르다. 작은 손실도 서민들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기에 무책임하고 무차별적인 대량 판촉 활동은 자제돼야 한다.
어느 기관보다 고급 인력을 많이 보유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독창적 상품 하나 만들지 못하고 감독기관이 만들어주는 정책상품에 매달려 후진적 판촉 경쟁을 단체로 벌이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