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스스로 권한을 깎아먹는 설계다. 아니면 과거 정책을 '관치의 역사'라고 자인하는 꼴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내놓은 '민간주도형 모태펀드'를 접한 자본시장업계 반응은 대부분 비슷하다. '긴 단발'이나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같은 모순된 표현이라고 수근댄다.
일단 모태펀드는 '정부'가 돈을 모아 만들고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한국벤처투자를 통해 조합에 출자해 투자하는 방식이다. 그 자체로 정부 주도 정책 펀드다.
청년, 영화, 여성, 모험, 환경, 도시재생 등 특정 '정책 목적'이 반영된 출자 펀드가 있고 의무 투자비율도 있다. 금융위원회도 모태펀드와 비슷한 구조의 성장금융펀드를 만들고 한국성장금융을 통해 투자한다.
모태펀드와 성장금융 모두 정부 출자금으로 정책 목적 달성을 유도하면서 실제 운용은 자본시장과 기술 혁신 논리를 따른다. 그래서 업계와 시장의 '마중물'로 불린다. 모태펀드란 말엔 정부가 주도하되 민간 방식으로 운용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
그런데 모태펀드 앞에 갑자기 '민간주도' 수식어를 붙이니 꼬인다. 모태펀드의 핵심인 정부출자금을 빼는 게 '민간주도 모태펀드'의 골자인데 정부가 돈을 넣지 않는 모태펀드가 존재할 수 있을까. 돈 대신 세제혜택을 준다지만 세금이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시장 관계자는 없다.
두해전 뉴딜펀드에서 이미 경험했던 것처럼 금융위가 설계하면서 '민간 주도'를 외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그전의 뉴딜펀드, 성장금융펀드 등은 '정부 주도 관치 펀드'라는 의미일까.
시작부터 삐그덕거리는 새출발기금의 모습도 비슷하다. 소상공인 부채 감면을 위해 금융권, 지방자치단체 신용보증재단 등을 중심으로 채무조정을 돕는 '민간주도'라고 자랑하지만 실제론 금융위가 연일 설명하고 논란에 해명하는 '정부 주도'다.
정책 본질과 별개로 빚투에서 손실을 본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등의 프레임에 갇혔다. 정부의 발표도, 금융권의 자율도 명확치 않다.
새정부의 기조가 자유, 민간 주도라는 점에서 이를 정책에 담으려는 노력은 당연하다. 다만 '민간 주도'라는 단어에 얽매여 민간 주도를 정부가 주도하는 모순된 행보를 할 필요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