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된 라덕연 투자자문업체 대표 일당의 행적이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라 대표는 투자자들에게 휴대전화와 증권계좌를 넘겨받아 통정매매 수법으로 여러 종목의 주가를 장기간 끌어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미등록 투자자문 업체를 운영하며 투자자를 끌어모은 혐의, 투자자 수익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나눠받아 빼 돌리는 등 범죄수익을 거둔 혐의도 있다.
시세조종으로 2642억원의 부당이익을 거뒀고 이 가운데 1321억원을 수수료로 챙긴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다단계 방식'으로 자금을 유치했기 때문인데 현재까지 알려진 투자자 수만 최소 1000명이 넘고 임창정 등 유명 연예인과 골프선수, 의사, 기업 오너 및 경영진까지 연루됐다.
간접 피해자까지 합하면 규모가 더욱 커진다. 이번 사태에 개입된 병원장이 운영하는 한 재활병원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데, 금액으로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라 대표측이 관리했다는 9종목이 일시에 폭락하는 과정에서 이번 사태와 무관하게 해당 주식을 매매했던 투자자들의 손실도 막대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피해액이 2조원 이상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들과 반대로 라 대표는 돈을 주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 가장 시세가 비싼 지역에 사무실과 집을 두고 활동했는데 해외명품 판매업체부터 럭셔리 위스키·라운지 바, 스크린 골프 스튜디오, 방송 콘텐츠 업체,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를 운영했고 리조트, 승마사업과 해외 골프장도 인수했다고 하니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당국이 감시소홀로 질책을 받는 중이다. 라 대표가 시세조종에 동원했다는 차액결제거래(CFD) 계좌는 레버리지를 크게 활용할 수 있는데, 당국이 이런 빚투(빚을 내서 투자)를 방치해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주가가 싸고 유통주식이 적은 동전주, 품절주를 장기간에 걸쳐 시세조정하는 행위도 사전에 모니터링하지 못했다는 책임도 거론된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말 없이 돌을 맞고 있지만 억울한 측면도 있다. 당국이 CFD 거래가 가능한 전문 투자자 요건을 완화했던 2019년은 정부가 저성장과 실업해소를 위해 경제성장과 시중자금의 흐름개선, 그리고 이를 위한 금융혁신을 주요 아젠더로 추진하던 시기였다. 인터넷 전문은행이 활성화되면서 핀테크와 혁신금융 서비스 규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 화살이 날아왔다. CFD도 일종의 혁신금융으로 거론된 상품이었다.
결국 당국은 '전문 투자자 전용'이라는 단서를 달아 CFD 규제를 완화했다. 그래도 이후 금감원은 CFD가 과도하게 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10배까지 가능했던 CFD 레버리지 비율을 2021년 2.5배로 낮추고 무제한이었던 한도를 2022년 1인당 20억원으로 제약했다. 이 때 투자자와 업계의 반발로 난처해하기도 했다. 빚투가 정말 문제라면 선물옵션이나 공매도 같은 상품도 없애야 한다. 2001년 미국 9·11 테러 당시 미국 선물옵션 시장에선 원금의 수천배 손실이 발생했다.
독자들의 PICK!
CFD 거래증가는 당국의 책임이라기 보다 대주주 양도세 회피 등 다양한 배경이 있었다. 시세조종 문제도 그렇다. 라 대표가 활용한 수법처럼 팀을 꾸려 휴대폰 명의자가 있는 곳에 직접 가서 매수·매도 주문을 하는 경우는 사실상 본인확인이 어렵다. 그나마 인터넷프로토콜(IP) 추적과 적발기법을 확충해 놨기 때문에 저런 회피수단이라도 동원한 것이다.
기법은 갈수록 진화하는데 이를 따라갈 인력이나 예산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당국의 책임론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은 비난보다는 당국에 힘을 더하는 격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물코를 수리하는 어부를 탓할 게 아니라 그물의 크기와 조류에 문제가 없는지 한번 더 점검할 시기다. 라덕연은 수 많은 라덕연 중 일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