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정부3.0과 원형감옥

[우리가 보는 세상]정부3.0과 원형감옥

성연광 기자
2013.07.18 10:23
성연광 기자
성연광 기자

1791년 영국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설계한 원형감옥'판옵티콘'.감시탑 둘레를 따라 원형으로 설계된 이곳에선 소수의 직원들이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모든 죄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다.반면 죄수들은 감시자들의 시선이 보이지 않아 항상 행동을 조심할 수밖에 없다. 판옵티콘은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가 저서'감시와 처벌'에서 현대사회 감시체제의 이론으로 소개되면서 유명해졌다.

IT 기술발달로 개인들의 사생활이 낱낱이 사이버 공간에 저정되는디지털 정보사회가 급진전될수록 판옵티콘이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비판사회학자들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사실 메일,연락처,위치정보,사진, SNS대화내용 등 매일같이 인터넷 서버에 저장되는 정보에 빅데이터 기술이 결합될 경우,1차 신상정보는 물론 취미,정치적 성향,기호 등2차정보까지 추출해낼 수 있다. 게다가 개인별 건강정보와 금융·신용 등 공공 정보까지 합쳐질 경우,얼마든지 섬뜩한 감시정보로 재탄생할 수 있는 셈이다.

최근 글로벌 핫이슈가 됐던 미 정부의 사찰 프로그램'프리즘'이 대표적인 예다.전직CIA요원 스노든의 폭로대로라면,미국 정부는 구글 등 자국IT기업들의DB를 활용해 이메일,음성 및 화상채팅,사진 등 일반인들의 정보를 사찰해 왔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박근혜 정부가'정부3.0'비전을 제시한 이후 빅데이터 기술을 통한 판옵티콘 사회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 3.0은 매년 1억건 규모의 공공정보를 개방하고,민간 데이터와 융합해 국민들에게 실생활에 유용한 맞춤형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이나,오남용될 경우 자칫‘한국판 프리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8일 미래창조과학부가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 보고한'2012년 기술영향평가'보고서는 무분별하게 빅데이터를 도입할 경우 다양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개인정보에 대한 불법접근 등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는 기본이다.정부가 모든 정보데이터를 독점해 사회구성원을 통제하고 감시하는'빅브라더 시대'를 도래할 수 있으며,심지어 외국계 기업에 의존한 빅데이터 분석은 국가정보가 대외유출되는 위험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이같은 기술평가 보고가 있던 날 미래부는ICT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제도개선 추진계획을 동시에 내놨다.추진계획에는 데이터 관리 기준 및 개인정보 등이 빅데이터 도입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데이터 공유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빅데이터 도입 활성화를 위해 개인정보 규제장벽을 낮추겠다는 의도 아니겠느냐"는 한 시민운동가의 걱정을 그냥 흘러들을 수만은 없다.

물론 빅데이터 기술은 잘만 쓰면 더 없이 유용한 미래기술이다.가령,정부가 보유한 건강보험DB와SNS정보를 연계해 홍역,조류독감,사스 등 감염병 발생 예측모델을 개발해 주의예보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서울시 교통데이터와 이동통신사의 유동인구 데이터를 연계,분석해 최적의 심야버스 노선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빅데이터의 장밋빛 기대에 취해 부작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이제라도 정부3.0과 빅데이터 활성화에 앞서 빅데이터의 명암을 명확히 따져 설계단계부터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프리즘 역시 자국 기업들의 서버에 저장된DB가 기반이 되지 않았는가.프리즘 논란은 결코 남의 나라 먼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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