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연구원 몰라봤다"…28년만에 '금녀벽' 깬 안인영 월동대장

"女연구원 몰라봤다"…28년만에 '금녀벽' 깬 안인영 월동대장

류준영 기자
2014.10.08 06:19

[인터뷰]안인영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 첫 여성 월동연구대장 선임

남극세종과학기지 전경/사진제공=극지연구소
남극세종과학기지 전경/사진제공=극지연구소

"여태까지 묵시적으로 여성들의 참여가 제한돼 왔죠. 남극이라는 혹한 환경에서도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역할을 해 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7일 남극세종과학기지 파견 월동대 운영 28년만에 처음으로 여성 월동연구대장이란 중책을 맡게 된 안인영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58)은 "그동안 우리 과학계는 전통·보수적 여성역할이란 편견에 가로 막혀 여성연구원들을 너무 몰라봤다"며 이 같이 말했다.

안인영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사진제공=극지연구소
안인영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사진제공=극지연구소

월동연구란 남극에서 1년간 거주하며 연구하는 활동을 뜻한다. 11월~2월까지 남극 하계기간에 단기간 연구를 진행하는 여성 연구원들은 많지만, 3월~12월 10개월간 혹한기를 견디며 기지에 상주해 연구를 진행하는 여성연구원은 드문 실정이다.

여성이 월동대장직을 맡은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미국·독일 정도가 유일하며, 아르헨티나의 경우 여성연구원의 월동연구 참여 자체를 금하고 있다. 이런 점만 미뤄봐도 월동대는 '금녀(禁女)의 벽'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안 대장은 해양생물학자로서 1991년 우리나라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남극하계연구대 일원으로 남극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극지연구소 입소 후 20년간 남극기지를 2년에 한 번 꼴로 한 달씩 머물며, 극지해양생물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죠. 그동안 경험이 충분히 쌓인 덕에 월동대장직을 맡겠다는 제 의견을 소장(김예동)님께서 흔쾌히 받아주셨어요."

여성이 남극기지에서 지내기엔 불편함이 크게 따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걱정되지 않았을까.

"90년대에는 인공위성 전화를 한 달에 1~2번 쓸 수 있었고, 연구시설도 차디찬 컨테이너 박스에 있었어요. 인터넷도 안 되니 진짜 고립된 생활이었죠. 7~8년전만 해도 여성전용 화장실이 없었어요. 그런 데다 남극기지까지 가는 데만 꼬박 4박5일이나 걸렸어요. 배멀미로 엄청 고생했죠. 하지만 지금은 항공기를 임대해 3시간이면 가요. 연구소에서 각 방에 전용화장실을 설치해 주기로 하는 등 생활환경이 많이 나아지고 있죠."

극지연구소 여성연구원 비율은 선임과 책임연구원들을 모두 합해 15명 가량 된다. '겨우', '고작’이란 표현이 절로 나올만 하지만,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고위직 연구원 수가 이 정도면 비교적 많은 편에 해당된다.

"최근 여성연구원 수가 늘면서 대선배가 되다 보니 뭔가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그래서 (월동대장에)자원하게 됐죠. 내년 하반기부터 3여년에 걸쳐 세종과학기지의 노후시설 및 환경개선 사업이 시작되는 만큼, 여성연구원들에게 안전하고 최적화된 연구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지원할 거에요."

남극세종과학기지가 위치한 킹조지 섬 내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 중국, 러시아, 폴란드 등 8개국 기지가 운영 중이다. 아시아계 첫 여성 월동대장인만큼 그의 포부도 남달랐다.

"남극기지는 연구뿐만 아니라 '민간외교의 장'이라고 할 수 있죠. 특히 이곳에선 연안 생태계 연구를 통해 온난화를 극복하려는 국제공동연구가 활발해요. 우리가 연구를 리드해 국격을 높일 수 있도록 힘쓸 거에요."

제28차 월동연구대를 이끌 안 대장은 내달 24일 출국해 내년말까지 17명의 대원들과 함께 △남극 환경변화 모니터링 △해양생물자원 및 생태계 △지질환경 및 자원특성 △빙하 및 대기환경 △고해양 및 고기후 등에 관한 연구활동을 수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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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영 기자

·머니투데이 유니콘팩토리(미래사업부) 차장 ·한국과학기자협회 이사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 석사 졸업 ·한양대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2020년 대한민국과학기자상 ·(저서)4차 산업혁명과 빅뱅 파괴의 시대(공저, 한스미디어) ■전문분야 -벤처·스타트업 사업모델 및 경영·홍보 컨설팅 -기술 창업(후속 R&D 분야) 자문 -과학기술 R&D 정책 분야 컨설팅 -과학 크리에이터를 위한 글쓰기 강연 -에너지 전환, 모빌리티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자문 -AI시대 기술경영 및 혁신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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