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vs 알파고] 4차 대국 관전포인트…'야생마'로 돌아온 이세돌의 실패를 딛는 투혼

"초등학교 6학년 때 2학년 이세돌을 처음 보았다. 전국대회 결승전에 마주앉아 혼줄이 났다. 당시 뒤통수를 맞은(뭔가 의표를 찔려 패한 듯) 기분이 아직도 남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어제 또다시 뒤통수를 맞았다. 챌린지매치 3차전을 보고 그의 열정, 바둑에 대한 한결같은 모습에 감동했다(이 9단은 대국을 끝낸 뒤 복기검토를 마치고 돌아간 호텔방에서도, 그다음 이어진 가벼운 맥주 한잔의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알파고와의 바둑을 복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떤 표현으로도 대신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의 모습을 누구에게라도 전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지난 12일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매치 3차전 심판을 맡은 동료기사 한종진 9단의 소감이다. (약간의 첨삭이 있다)
지난 관전평이든 오늘(13일) 바로 있을 4차전의 관전포인트든 이세돌 9단의 심경과 자세를 가장 먼저 전하고 싶다.
이유는 3차전이 시사하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승부는 알파고의 우승으로 결정됐지만, 이 9단은, 인공지능의 계산력 그 이상의 '특별한 무엇'이 인간에게 있음을 보여줬다. 인공지능에 패한 인류의 대표는 충분히 훌륭했다.
그는 이미 우승의 욕심을 내려놓았다. 2차전이 끝난 뒤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한 판만이라도 이겨보겠다'는 말도 이길 수 있다기보다는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의 느낌이 강했다.
3차전의 이세돌은 1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과거로 보내진 존 코너의 아버지처럼. 과거의 자아를 회복한 이 9단은 폭풍처럼 알파고를 밀어붙였다.
1, 2차전에서 인공지능의 특성을 파악하려고 고심했던 이 9단은 상대가 인간이냐, 기계냐 그런 의식을 버린 것처럼 보였다. 변화무쌍한 난파도의 출렁거림, 관전자들은 '쎈돌류'에 열광했다. 좌상귀 첫 접전에서 알파고의 모양을 흐트러뜨리며 실리를 챙기는 전략은 성공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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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두 번의 대국에서 인간의 사고체계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괴수를 연발하며, 데미스 하사비스(딥마인드 설립자)가 자랑하던 '자율강화학습'을 입증한 알파고는 처음으로 인간다운(?) 착수로 대항했다. 마주앉아 감정을 느끼는 인간처럼 이 9단의 분노를 알아차린 듯 교묘하게 싸움을 비껴갔다.

지금까지 밝혀진 알파고의 강점은 연결에 능하고 선수를 뽑아내는 수순비틀기에 탁월하며(이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선, 후수의 개념을 완전히 습득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국지전의 수읽기가 정확하다는 것이었는데 3차전의 알파고는 하루 만에 조금 더 인간에 가깝게 진화한 것처럼 보였다(약해졌다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는 뜻이다).
좌상귀 접전 중 이 9단의 파상공격을 회피한 32는 여전히 낯설지만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파격은 아니었다. 이전의 기이한 착수들에 비하면 어쩐지 인간의 피가 도는 듯한 연결수단이었다.
인터넷 바둑사이트 사이버오로(cyberoro) 대국실에서 이 대국을 해설한 송태곤 9단은 '알사범에게 한 수 배웠다'며 감탄했다. 요즘 프로들은 알파고를 동료대하듯 '알사범'이라 부른다.
좌상귀의 접전은 마른 들불처럼 맹렬하게 번져 좌변으로, 좌하귀로, 중앙으로, 우변으로 다시 하변으로 타들어갔다. 이 9단은 화염을 품은 불칼이 되어 알파고의 전면을 찔러갔다.
모든 착수를 1분 30초 안에 해결하며 여유를 보이던 알파고는 조금씩 신중해졌다(착수시간에 큰 차이는 없지만 그런 미묘한 느낌이 있었다).
이 9단은 결국 졌다. 이 9단은 하변에서 패의 공방을 만들어 배수의 진을 쳤고 그 최후의 전투에서 불꽃처럼 산화했다. 이상한 듯, 느슨한 알파고의 착수와 형세판단은 소름끼치도록 정확했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세를 잃지 않았다. 실수 같은 이상한 수들이 몇 번인가 등장했으나 승부가 뒤집힐 정도는 아니었고 그조차 알파고의 계산 속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3차 대국 관전평을 여기서 끝내지 않는 이유는 승패를 떠난 이 9단의 투혼 때문이다. 1, 2차전에서 이 9단은, 인간의 생각 밖에 존재하는 인공지능의 승리공식에 말려 자신의 바둑을 두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이 암울한 체험에 멘탈이 붕괴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2차전 종반, 마지막 초읽기에 몰리며 어쩔줄 모르고 노여움과 슬픔이 뒤범벅된 눈빛으로 괴로워하던 이 9단의 표정은 상실감, 허탈함, 슬픔에 동화한 동료, 선후배 기사와 이 대국을 지켜본 많은 팬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자극할 만큼 강렬하게 각인됐다.
불과 하루의 휴식을 취하고 3차전에 나선 이 9단은 10년 전의,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 이세돌로 돌아왔다.
그리고 보여줬다. 1202대의 CPU와 176대의 GPU가 탑재된 슈퍼컴퓨팅으로 자신보다 1000배 이상 빠른 속도의 연산능력으로 불을 토하는 '괴물'에 단신으로 맞서 싸우는 인간의 위대한 투혼을.
미련없이, 후회없이 싸웠다. 돌아온 이세돌은 완벽한 인간의 모습에 대하여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있었다. 완벽한 인간은 실패를 하지 않는 인간이 아니라 그 실패를 딛고 더 힘차게 일어서는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승부는 끝났지만 아직 남겨진 4, 5차전은 더 기대된다. 인류를 대표하는 최고의 지성과 감성이, 당대 최고의 인공지능을 상대로 펼쳐줄 고난도의 기예를 설레는 가슴으로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