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심교의 내몸읽기]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여객기 추락 사고로 탑승자 181명 중 구조된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179명 전원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면서 갑작스레 가족을 떠나보낸 유가족들의 정신 건강에 경고등이 켜졌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들은 "이번 사고처럼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경험한 유가족과 생존자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가 생길 수 있다"며 "방치해 증상이 악화하면 자살하거나 자살을 시도할 우려가 크다"고 경고했다.
이번 비행기 추락사고처럼 대형 참사로 갑작스레 가족을 잃은 유가족에게선 PTSD가 흔히 발생한다. 실제 지난해 7월15일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 이후 유가족 상당수가 1년 넘게 심각한 PTSD 증상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집중호우로 청주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인근 미호강 제방이 터졌는데, 유입된 하천수로 당시 지하차도를 지나던 시내버스 등 차량 17대가 물에 잠겼고, 14명이 숨진 사건이다.
![[무안=뉴시스] 이영환 기자 =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여객기 착륙 도중 충돌 사고가 난 29일 오후 무안국제공항에서 구급대원들이 기체 내부 탑승객 수색을 하기 위해 가림막을 설치하고 있다. 2024.12.29. 20hwan@newsis.com /사진=김근수](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4/12/2024122914455659650_2.jpg)
충북대 심리학과와 충북교통방송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8월까지 4차례에 걸쳐 당시 참사의 유가족과 생존자, 생존자 가족 등 30~3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신건강 설문조사 결과, 1차 조사(사건 직후) 당시 응답자 가운데 69.2%가 PTSD를 호소했다. 1년이 지난 4차 조사(63.3%)에서도 이 비율이 비슷하게 유지됐다. 1~2명은 자살을 시도했거나 계획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조사를 진행한 충북대 심리학과 최해연 교수는 "대상자들의 모든 정신건강 항목 지표는 시간이 지나면서 소폭 개선됐다가 1주기쯤 진행된 마지막 조사에서는 다시 첫 조사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증상이 나빠졌다"며 "PTSD가 만성화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재난 피해자들의 PTSD 증상은 통상 4년은 지나야 좋아진다"면서 "지자체가 피해자들이 전문적인 심리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장기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참사를 근처에서 직접 목격한 일반인에게도 PTSD가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01년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9·11 사건 당시 폭격받은 건물 현장이 아니라 옆에서 폭격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에게서 PTSD가 발견됐다. 우리나라에서도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때 무너지는 건물 안에 있다가 살아난 사람 중 PTSD가 생기지 않았는데, 이 장면을 가까이서 목격한 사람 중 PTSD가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PTSD는 사람이 사고, 전쟁, 고문, 자연재해, 폭행, 강간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대해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 고통을 느끼며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는 질환이다. 트라우마를 일으킨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나서 ▶강제적이고 반복적으로 떠올리고 ▶관련 장소·상황을 회피하려 하고 ▶예민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인지·감정 상태가 부정적으로 되는 등 4가지 증상이 한 달 이상 지속하면 PTSD로 진단한다. 보통 큰 사고를 경험하는 사람 10명 중 1명 정도에서 PTSD가 나타난다.

PTSD는 대부분 사건 직후부터 불안정하고 스트레스가 계속 쌓이다가 발전하지만, 예외도 있다. 사건 직후에는 덤덤한 듯 보였는데, 6개월이 지난 후 뒤늦게 증상이 나타나는 '지연성 PTSD'다. 지연성 PTSD의 경우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 없어 급성(사건 발생~3개월)이나 만성(사건 발생 3개월 후에도 증상 지속)보다 대처가 쉽지 않다.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면 사건으로 인한 위험함을 지속해서 느끼고 무기력증에 빠지는 등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병철 교수는 "사건 직후 유가족이나 생존자가 덤덤해 보여도 주변에서 꾸준히 심리 정서 상태를 관찰하며 PTSD 증상이 있는지 확인해주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독자들의 PICK!
PTSD는 외상·사고로 자기 신체 일부, 가까운 사람 등을 잃었을 때 발병 확률이 증가한다. 이병철 교수는 "PTSD 예방을 위해 초기(사건 발생 직후부터 72시간 이내)에 심리적 응급치료를 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PTSD 환자의 30% 정도는 치료받지 않아도 증상이 저절로 좋아지지만 70% 정도는 증상이 악화하거나, 악화-호전을 반복한다. 이들에겐 약물요법이 권장된다. 약물 치료로는 선택적 세로토닌제 흡수 억제제를 주로 사용한다. 삼환계 항우울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약은 최소 8주는 사용해야 하며, 효과가 있으면 1년 정도 유지하는 게 권장된다. 필요하면 수면제·항불안제를 사용할 수도 있다. 지연성 PTSD일 땐 증상별 세밀한 맞춤형 치료가 필요하다. 대개 약물치료와 안정화 요법, 노출요법,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 같은 정신 치료가 시행된다. 증상이 심한 급성기엔 약물로 극도의 예민한 상태를 조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