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상위 제약사인 대웅제약(149,700원 ▲400 +0.27%)이 그동안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의약품 유통 체계 혁신에 나섰다. 거점 도매사를 선정해 배송 안전성을 향상하고 물류·재고 관리 효율화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대웅제약은 지난달 1일부터 전국을 10개 권역으로 나누고, 거점 도매사를 통해 의약품을 공급·회수하는 '블록형 거점 도매'를 도입했다. 그동안 불특정 다수의 도매사가 의약품을 유통하던 데서 '소수의 파트너'에게 1년간 독점적 권리를 부여하는 게 골자다.
거점 도매의 필요성은 환자·약사를 비롯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정부기관에서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금의 다단계·분산형 구조로는 어디에, 무슨 재고가, 얼마나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산량을 늘려도 품절 사태가 빚어지고 물량이 한곳에 쏠리는 공급 불균형 문제를 구조적으로 피할 수 없었다.

대웅제약은 이런 문제를 블록형 거점 도매 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자체 개발한 배송관리시스템(TMS)이 실시간 배송 위치와 도착 예정 시각을 제공하고, 인공지능(AI DCM)을 활용한 수요 예측으로 특정 지역·도매사로의 물량 쏠림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TMS·AI DCM 시스템을 거점 도매사에 무상으로 구축·교육하는 등 초기 투자를 단행했다.
배송 서비스 역시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했다. 거점 도매는 하루 2회 정기 배송을 기본으로 △주문 후 3시간 이내 긴급 배송 △약국 내에 의약품을 배달하는 새벽 배송을 제공한다. 반품 처리 기간도 거점 유통사가 직접 수거한 뒤 제약사로 보내는 '직배송 시스템'을 통해 10일 이내로 줄였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온·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의약품 전용 차량을 도입하고, 각각의 온도 유지 시스템과 중앙 관제 시스템을 결합해 의약품 변질 위험을 실시간으로 감시한다"며 "공장 출발부터 약국 도착까지 전 공정에 품질 사고 제로(0)가 목표"라고 말했다.

다만, 전체 의약품 공급 업체의 88%를 차지하는 도매사들이 '제약사가 목줄을 죈다'며 반발하고 있어 제도 안착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의약품 유통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통 효율화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유통 주도권을 독점하고 다른 도매사는 고사시키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일반 도매사도 거점 도매사의 승인 아래 의약품 반품이 가능하게 바뀌었는데, 이는 시장지배적 제조사의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것"이라 비판했다. 한국의약품유통협회는 1인·현수막 시위에 이어 지난 21일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강남구 대웅제약 본사 앞에서 반대 집회를 여는 등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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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의약품 유통의 경우, 제약사는 병·의원, 도매사는 약국 중심으로 이뤄진다. 거점 도매 도입은 제약사와 거래하던 도매사의 유통 마진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빌미로 도매사가 제약사를 '보이콧'하면 제약사도 단기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 실제 이명선 DB증권 연구원은 "전문의약품 유통망 재정비에 따른 제품 반품·수수료 정산으로 대웅제약의 1분기 영업이익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전문의약품의 상반기 매출도 소폭 둔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런데도 대웅제약은 '후퇴'를 고려하지는 않는 모습이다. 미국과 독일, 프랑스, 영국 등에 대형 도매사 중심의 거점 도매가 안착한 것은 유통 집중화에 따른 안전성·효율성, 서비스 향상을 시장이 인정한 결과라며 오히려 확대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국내 도매사 수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유통 구조가 촘촘해진 것과 서비스 품질이 올라간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블록형 거점 도매는 물량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온도 관리·배송 시간·재고 보고 등 엄격한 물류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 '책임형 파트너십'으로 역량 있는 업체라면 언제든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대웅제약의 '유통 실험'을 주목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네릭(복제약) 약가 인하로 제약사마다 비용 절감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며 "유통 체계 변화에 따른 투자 대비 이익, 규모의 경제 달성 여부 등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