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바라크, '체제 내 권력이양' 수순 돌입…美 속내와 일치?
이집트 반정부 시위가 연일 격화되면서 희생자 수가 100명이 넘어서는 등 정국 불안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무바라크 정권의 향후 행보와 운명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호니스 무바라크 대통령이 29일 내각을 전격 해산하고 오마르 술레이만 정보국장을 부통령에 임명하는 등 민심 수습을 위한 승부수를 띄웠지만 성난 시위대의 저항은 오히려 거세지는 양상이다.
한 치 앞도 전망키 힘든 이집트의 향후 정국을 시나리오별로 정리했다.
◇무바라크 플랜A. '체제 내 권력이양'= 이집트에서 부통령이 임명된 것은 지난 1981년 무바라크 대통령의 정권 장악 이후 처음이다. 30년 장기집권을 통해 민심을 잃은 무바라크가 사실상 권력이양 절차에 들어간 것인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무바라크는 28일 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이후 전격적으로 술레이만을 부통령에 아흐메드 샤피크 항공장관을 새 총리에 기용하는 정부 개각을 단행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오바마대통령은 30분간의 통화에서 민주화와 경제자유 등 약속된 개혁을 이행하라고 무바라크에게 촉구했다. 앞서 백악관은 반정부 시위에 대한 무력 사용 시 연 15억 달러에 이르는 원조를 중단할 수 있다고 그를 압박했다.
이러한 점에서 무바라크의 개인적 신임은 물론, 정권 안보의 핵인 군의 지지를 받는 술레이만의 지명은 안정적 정권 이양을 바라는 미국 등 서방이 가장 선호하는 카드라 할 수 있다.
그가 오는 9월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 집권당의 후보로 나서거나, 조기에 무바라크로부터 후계지명을 받으면 무바라크의 장기집권과 그의 아들 가말 무바라크로의 정권 세습에 분노하는 민심을 어느 정도는 어루만질 수는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에마드 가드 알아흐람 정치전략연구센터 애널리스트는 무바라크 대통령의 술레이만 정보국장의 부통령 임명은 정국 이슈를 안보로 전환시키는 동시에 정국을 군부와 정보국 지배하에 둬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더라도 정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무바라크 대통령과 가말이 오는 9월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술레이만을 후계자로 내세워 체제 내 권력이양을 통해 결국은 시위대가 요구하는 민주화와 정권 퇴진을 피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독자들의 PICK!
◇'정권교체' 시위대 꿈 이뤄질까?=무바라크 대통령의 내각 해산과 후계자 지명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더욱 격화되고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의도를 간파한 시위대들은 자신들의 염원인 정권교체와 민주화에 대한 요구를 꺾지 않았다.
시위대들은 오로지 정권교체가 시위를 멈출 수 있다는 듯 '무바라크 키파야(더이상은 안된다)'만을 외쳤다. 전문가들도 정권교체가 요원하지는 않겠지만 시위가 계속 확산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달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 가운데 시위대의 구심점으로 떠오른 반정부세력의 핵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미국 등이 용인할 수 있는 또 다른 카드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알바라데이는 가택연금된 상황에서도 알자지라TV와 인터뷰를 갖고 무바라크 대통령의 내각 개편에 대해 "수많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은 것으로 쓸모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우리는 체제 변화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며 "이집트인들은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는 하나의 요구를 외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적 선거를 통한 과도정부 수립을 제안하며 "시민들의 요구를 덮는 어떤 시도도 이집트의 정국 불안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사회의 공식적인 지지도 이어지면서 시위대의 정권교체 기대감은 더욱 높아졌다. 이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집트 정부에 폭력 자제와 민주화, 공정 선거 실시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또 미국 뉴욕 유엔(UN) 본부 인근에서는 수백명의 인파가 몰려 이집트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거리 행진을 벌였으며 영국 런던에서는 약 300명이 이집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알바라데이는 국제적 명성에 비해 국내 기반이 취약하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그러한 그가 무바라크 정권 붕괴 후 정치적 혼돈과 진공 상태에서 확고히 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할 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조차 반신반의하고 있다.
◇"이란식 이슬람 혁명은 최악의 시나리오"=이집트 반정부 시위에 따른 정국 변화는 미국의 선택이 최대 변수 중 하나다. 미국 정부는 현재까지 국제사회 여론 등을 고려해 무바라크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이집트의 친미 정권이 붕괴할 경우 중동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나아가 주변 산유국 왕정들의 체제마저 흔들 우려가 있는 이란식 이슬람혁명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이집트 사태를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는 미국은 이날 국가안보회의(NSC)를 소집해 대책을 논의하고 또다시 폭력 자제 및 정치 개혁 촉구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 했다. 특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무바라크 대통령과 통화를 나눈 사실을 공개하며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민주화, 경제발전 약속에 대한 구체적 이행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대변인도 이집트의 내각 개편과 관련, "술레이만 부통령은 우리가 잘 아는 인물이자 긴밀히 협력해온 인물"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미국이 무바라크 대통령의 '체제 내 권력이양'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전문가들은 나아가 미국 정부의 이같은 입장은 결국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이 아닌 정치개혁을 전제로 그의 유임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LA타임스는 누구도 미국이 이집트의 정권교체를 지지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며 미국 정부가 이집트의 반정부세력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티븐 쿡 미 외교위원회(CFR) 중동연구소 연구원은 미국은 무바라크와 이집트 없이는 중동에서 변덕스러운 사우디나 약체국 요르단, 작은 걸프국들 밖에 편이 없다며 새로운 정권이 구체제 개혁을 위해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것을 우려해 이집트의 정권교체를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미국의 강력한 지지 없이는 완전한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집트 사태가 이슬람 원리주의를 앞세운 이슬람식 혁명으로 치달을 경우 미국은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격화되고 있는 시위 양상과 국제사회의 여론, 미국의 태도 변화 등에 따라 이집트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