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그때 그 은행들

[기자수첩]그때 그 은행들

차예지 기자
2013.06.19 14:05

아시아 금융 중심지 싱가포르에서 대규모 금리 조작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7월 전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리보 조작 사건’이 발생한 지 1년도 되지 않아서다. 게다가 조작자도 ‘그때 그 은행들’이다.

14일 싱가포르통화청은 싱가포르 20개 시보금리와 스와프 금리, 환율 기준을 조작해왔다고 밝혔다. 시보금리는 싱가포르판 '리보(LIBOR·영국 은행간 금리)'로 싱가포르 내 주요 은행 11곳이 매일 싱가포르달러화를 빌리는데 드는데 비용을 제출한 것을 토대로 산출한다.

이번 사건에 ING그룹, 로열뱅크오브스크틀랜드(RBS), UBS가 주도적으로 가담했으며 바클레이스와 크레디트스위스(CS), 스탠다드차타드(SC), HSBC 등 대형은행 대부분이 연루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트레이더 133명이 이번 금리 조작에 연계된 정황이 드러났다.

시보는 싱가포르 은행 간 거래뿐 아니라 주택담보 대출이나 자동차 및 신용카드 대출, 각종 파생상품 거래에서 기준금리로 쓰인다. 그렇기 때문에 시보 조작은 은행이 대출자 등에게 사기를 쳐 부당이익을 취한 ‘중범죄’다.

하지만 싱가포르통화청은 이들 은행에게 벌금 등 형사제재를 하지 않았다. 가담 정도에 따라 1년간 제로금리로 10억~12억싱가포르달러(약9000억~1조800억원) 규모의 대손충당금을 쌓으라는 처분과 트레이더 보너스 삭감 등이 전부였다.

앞서 영국과 미국 금융당국은 바클레이스와 RBS, UBS에 리보금리 조작 혐의로 25억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은행은 이번에 싱가포르에서 또 ‘일’을 냈다. 그런데 ‘재범’인 이들이 이번에는 벌금조차 내지 않게 된 것이다.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데다 금융 당국 처벌까지 미약하니 비슷한 사건이 끊이지 않는게 놀랍지 않다. 지난해 11월 영국 금융가에서는 천연가스 가격 조작 의혹이, 올해 3월에는 금·은 가격 조작 의혹이 불거졌으며 최근에는 대형은행들이 10년간 환율을 조작한 사실까지 포착됐다.

제 배만 채우려는 금융권의 ‘윤리 실종’을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되는지는 우리 모두는 2008년에 경험했다. 규제 당국에서 대규모 조사를 하고 벌금폭탄을 ‘때려도’ 비슷한 일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금융권이 아직 쓴 맛을 덜 봤다는 뜻일 것이다.

제도적 개혁 없이 탐욕에 취해있는 금융권이 자성하길 바라는 것은 확실히 순진한 생각이다. 이왕 뽑아든 칼이라면 좀 더 세게 휘두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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