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 나는 중국을 불편부당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서울=뉴시스]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3일 중국 푸젠성 샤먼 하이웨호텔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외교부 영상 캡처) 2021.04.03.](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1/08/2021082614031777461_1.jpg)
지난 8월 24일은 한중 수교 29주년 기념일이었는데, 유독 조용하게 지나갔다. 필자 역시 그날 저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지인이 올린 게시글을 보고서야 한중 수교 29년인 사실을 알았다.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추진한 북방정책의 화룡정점이었다. 그날 이후 중국은 우리의 생활 속으로 뛰어들어왔으며 수출 등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016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유커(중국인 관광객)가 80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전성기를 누리던 양국 관계는 2017년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제재를 계기로 냉각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중감정도 역대 최악 수준이다.
3개의 그래프, 미국 대비 중국 GDP 비중,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금액 및 중국 유커 방문객 수를 보면서 지난 29년 동안 발생한 중국의 기념비적인 사건, 경제적 변화 및 한중 관계를 되돌아보자.

중국의 대외 정책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 경제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알아야 한다. 1992년 한중수교 당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4269억 달러(약 495조원)였으며, 이는 미국 대비 겨우 6.5%에 불과했다. 당시 중국은 1세대 마오쩌둥, 2세대 덩샤오핑에 이어 3세대 지도부인 장쩌민이 국가주석을 맡았지만 덩샤오핑이 막후 실세로 자리 잡고 있던 시기다.
당시 중국은 미국과의 국력 차이가 커서 어떻게 해서든 힘을 길러야 하는 시절이었고 한중 수교를 통해 중국보다 먼저 경제개발을 시작한 우리의 경험을 배우고 싶어했다.
중국 경제가 글로벌 분업 구조로 본격적으로 편입하게 된 계기는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다. 2001년 미국 대비 중국 GDP 비중은 12.7%에 불과했으나 WTO 가입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하면서 2011년 48.6%까지 성장한다.
이 시기는 4세대 지도부인 후진타오 주석 시절(2003~2012)과 대부분 겹치는 구간인데, 중국은 그야말로 폭풍성장했다. 한 해 무역흑자가 2000억~3000억 달러에 달하고 외국인직접투자(FDI)까지 쏟아지면서 매년 몇 천억 달러씩 외환보유고가 증가했다.
2013년 출범한 5세대 지도부인 시진핑 주석이 글로벌 사회에서 맘껏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권력자가 바뀐 영향보다는 중국의 경제 규모가 커진 이유가 더 컸다. 몸집을 키운 중국 경제력과 시대배경이 시진핑 같은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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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사드 배치로 인한 한중 마찰 국면이 발생한 데는 중국의 경제력이 커진 점도 영향을 미쳤지만, 다른 배경으로 꼽히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 노선 역시 항구적으로 지속가능한 정책은 아니었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이 급증하는 등 경제적으로는 중국으로부터 수혜를 보면서 안보적으로는 미국 편을 드는 걸 원치 않았다. 2017년 사드 배치는 양국간 숨어 있던 갈등 요인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계기였다.

한중수교 이후 우리나라의 대중수출은 급증했다. 1992년 약 27억 달러(약 3조1000억원)에 불과했던 대중 수출규모는 2018년 반도체 특수로 사상 최고치인 1621억 달러(약 188조원)를 기록하면서 26년 만에 61배 증가했다. 대중수출은 2020년 1326억 달러(약 154조원)를 기록하는 등 증가 추세가 꺾였는데,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자급률을 높이는 등 경제구조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사드배치와 사드제재로 발발한 한중 관계의 변화는 경제적인 변화의 영향도 크지만, 중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측면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게 한한령(限韓令)인데, 중국이 자국 문화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 사드배치를 핑계로 한류를 제재하고 있다는 추측이 많다.
2017년 중국에서 K드라마, K팝 등 한류의 영향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커졌다. 우리나라가 중국과 비슷한 유교문화권이라 중국인들이 정서적으로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던 데다 중국보다 먼저 발전하면서 세련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한류가 최정점을 찍은 시기는 '별에서 온 그대'가 방영되던 2014년 초였다. 필자가 상하이에 체류할 때였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상하이 한인타운에 필자가 가끔 가던 닭강정 가게가 있었다. 그런데, 전지현의 먹방으로 인해 치맥 열풍이 불자 한인타운 치킨집이 미어터졌을 뿐 아니라, 필자가 가던 닭강정 가게도 10미터나 되는 줄이 생긴 걸 보고 발길을 돌렸던 기억이 난다.

중국 유커 방문객 수를 봐도 비슷한 답이 나온다. 1995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중국 방문객 수는 불과 17만8000명에 불과했다. 유커라는 말조차 없던 시절이다.
중국 경제의 성장과 한류 영향으로 급증하던 중국 유커 수는 2016년 807만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후 2017년 중국의 사드 제재로 반토막이 났다. 이어 2019년 600만명선을 회복했으나 지난해는 코로나19 여파로 68만6000명으로 급감한 상태다.
미중 관계, 북한 문제 등에서 서로의 카드를 확인한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2017년 사드 배치 이전으로는 회귀할 수 없다. 하지만 한중관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양국 관계의 안정화를 시도해야 한다. 가깝고도 먼 나라 중국은 여전히 우리나라 최대 교역상대국이자 최대 관광객이 오는 나라다.
2021년 8월 24일 한중수교 29주년이 한중 관계의 최저점이기를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