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8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미·중 무역전쟁으로 수세에 처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내놓은 비장의 카드가 있다.
바로 중국판 나스닥을 표방한 기술주 전용 증시 커촹반(과학혁신판·科創板)이다. 당시 ZTE, 화웨이 등 중국 기업에 대한 미국의 반도체 제재가 이어지자, 기술 자립 없이는 미중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중국이 던진 승부수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2018년 11월 5일, 시진핑 주석이 중국국제수입박람회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상하이거래소에 커촹반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으며 불과 8개월 만인 2019년 7월 22일 커촹반이 정식 출범했다.
지난 22일 커촹반이 출범 3주년을 맞았다. 25개 상장기업으로 시작한 커촹반은 이미 430여개사가 상장한 자본시장으로 성장했으며 중국에서 처음으로 기업공개(IPO) 등록제가 시범 실시되는 등 중국 자본시장 개혁의 테스트베드 역할도 하고 있다.
만 3살이 지난 커촹반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시진핑의 '기술입국의 꿈'은 어떻게 진행 중인지 살펴보자.

지난 6월 30일 기준, 중국 커촹반에 상장한 431개사가 기업공개(IPO)를 통해서 조달한 자금은 6235억 위안(약 118조원)에 달했다. 지난해 코스피 증시에서 한국 기업들이 IPO를 통해 조달한 금액은 역대 최고치인 19조7084억원이다. 이 돈의 여섯 배에 달하는 자금을 중국 기술주들이 지난 3년 동안 조달한 것이다.
해당 기간 중 커촹반 IPO 수량과 조달금액이 전체 중국 본토 A주의 34%와 41%를 차지할 정도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촹반에 쏟아졌다.
커촹반 상장기업들이 규모와 질적인 측면에서 성장하면서 관련 기업들이 한데 모여 상승 효과를 내는 산업 클러스터 효과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특히 반도체, 제약바이오, 첨단장비제조 업종이 돋보인다.

업종별 IPO 조달금액을 보자. 반도체를 포함하고 있는 차세대IT 업종이 2659억 위안(약 50조5000억원)을 조달하며 전체 IPO 조달 금액 중 43%를 차지했다. 그 다음은 코로나19 팬데믹 후 투자 자금이 몰린 제약바이오 업종이 1391억 위안(약 26조4300억원)을 모집하며 22%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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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집중 육성 중인 첨단장비 제조업종도 998억 위안(약 19조원)을 조달하며 전체 IPO 조달금액 중 16%를 점하는 등 상당한 자금이 몰렸다. 나머지는 신에너지, 에너지절약, 신재료 순이었다.
출범 3년 만에 커촹반이 중국 기술기업들에게 자금을 수혈하는 대표 인큐베이터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IPO 조달금액 역시 시진핑 주석이 미중 기술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커창반을 설립한 목적에 부합하도록 첨단 하이테크 산업과 중국 정부가 집중 육성중인 전략적 신흥산업에 집중됐다. 미중 기술경쟁의 핵심영역은 △반도체를 비롯한 차세대IT △항공기·위성·스마트팩토리를 포함한 첨단장비 제조 △제약바이오 등 3개 분야다.
커촹반 상장기업을 업종 별로 분류해도 차세대IT, 첨단장비 제조, 제약바이오 업종 상장사가 각각 147개사(34.1%), 97개사(22.5%), 93개사(21.6%)로 나란히 1~3위를 차지했다.
지난 7월 21일 기준, 중국 커촹반 상장기업의 전체 시가총액은 약 5조8000억 위안(약 1100조원)에 달한다. 시가총액이 1000억 위안(약 19조원)을 넘는 기업은 5개사, 500억 위안(약 9조5000억원)이 넘는 기업은 11개사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중국 최대 파운드리업체 SMIC가 시총 3283억 위안(약 62조3800억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2020년 7월 16일 커촹반에 상장한 SMIC는 약 532억 위안(약 10조원)을 조달한 후 대대적인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에 나섰다. 초미세공정에서는 삼성전자, TSMC와의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지만, 올해 1분기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SMIC는 약 6%의 점유율로 5위를 차지하는 등 영향력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SMIC 외에도 커촹반 시총 10대 기업 중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CR마이크로 등 반도체 기업 2개사가 더 포함돼 있다. 트리나솔라, 진코솔라, 다초 뉴에너지 등 태양광 발전기업은 3개사가 포함되어 있으며 베이진, 블루머지 바이오테크 등 제약바이오 업체도 눈에 띈다.
커촹반 시총 상위업체 중 반도체, 태양광 발전 등 기술주가 돋보이지만, 바이오기업 역시 만만찮다. 특히 베이진은 지난해 매출액보다 많은 약 95억 위안(약 1조8000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할 정도로 R&D에 많은 공을 들였다.

베이진뿐 아니라 커촹반 상장기업의 R&D 투입강도(R&D 투자의 매출액 비중)도 2021년 약 13%에 달할 정도로 높은 편이다. 커촹반 상장기업 전체가 연구개발에 투입한 금액은 2019년 531억5900만 위안(약 10조원)에서 2021년 857억7000만 위안(약 16조3000억원)으로 늘었다.
이미 118조원이라는 거금을 움켜쥔 커촹반 상장기업들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지 아니면 미중 기술경쟁에서의 첨병 역할을 해낼지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