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랜 증오"…호주 해변 참사 뒤엔 급증한 반유대주의?

"가장 오랜 증오"…호주 해변 참사 뒤엔 급증한 반유대주의?

김종훈 기자
2025.12.15 15:12

가자지구 전쟁 이후 호주에서 반유대 사건 4배…총리는 총기 규제 강화 시사

15일(현지시간) 호주 시드니 본다이 비치 유대인 행사장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 이후 인근에 차려진 임시 추모 장소에서 한 여성이 앉아있는 모습./로이터=뉴스1
15일(현지시간) 호주 시드니 본다이 비치 유대인 행사장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 이후 인근에 차려진 임시 추모 장소에서 한 여성이 앉아있는 모습./로이터=뉴스1

호주 시드니 본다이 비치 유대인 행사장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 이후 호주 내 반(反)유대주의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오래 전부터 호주 사회에 만연한 반유대주의가 가자 지구 전쟁을 계기로 더욱 격화됐다는 것이다. 한편 호주 총리는 총기 규제 강화를 시사했다.

질리언 시걸 호주 반유대주의 근절 특사는 15일(현지시간) 호주 ABC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런 일에는 항상 전조 증상이 있다"며 "이런 일이 일어날까봐 두려워하며 숨죽이고 있었다"고 말했다. 앤서니 앨버니즈 총리는 지난해 7월 반유대주의 근절을 위해 역사상 처음으로 반유대주의 특사를 신설, 시걸 특사를 임명했다.

그는 "(반유대주의가) 오랜 기간 사회에 스며들었으나 우리는 강력히 맞서지 못했다"며 "반유대주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공동체를 파괴하는지 알리는 교육도 부족했다"고 했다. 이어 "(유대인) 공동체가 공포에 떨고 있다. 정부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전날 발생한 유대인 행사장 총격 사건의 범행 동기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현지 언론들은 반유대주의 사상에 무게를 두고 있다. 용의자는 50세, 24세의 부자로 성 씨는 아크람이다. 아버지는 현장에서 사살됐고 아들은 제압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입원 중이다. 이들 범행으로 15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사가 임명될 만큼 호주에서 반유대주의는 사회 문제다. 호주 유대인 집행위원회(ECAJ)가 지난 3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0월1일부터 1년간 호주에서 발생한 반유대주의 사건은 2062건, 지난해 10월1일부터 올해 9월까지 발생한 사건은 1654건이었다. 2023년 10월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습격으로 가자 지구 전쟁이 발발하기 전엔 연평균 342건이었는데, 가자 지구 전쟁 이후 4배 넘게 늘었다.

유독 호주에서 반유대주의 사건이 급증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5월 국제 유대인 단체 J7이 독일·미국·아르헨티나·영국·캐나다·프랑스·호주 등 7개국에서 2021년~2024년 반유대주의 사건 발생 건수를 집계한 결과 호주의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중동과 가장 가까운 독일, 프랑스에서도 가자 전쟁 이후 사건 증가율은 각각 1.82배, 3.84배였다.

수잔 러틀랜드 시드니 대학교 히브리어 교수에 따르면 호주 반유대주의 역사는 '가장 오랜 증오'라는 말이 있을 만큼 뿌리깊다. 유대인들이 종교 박해 등 여러 이유로 유럽에서 호주 이민을 택하자 호주 정부 차원에서 유대인 인구를 총인구의 0.5%로 제한하고 유대인들의 선박, 항공기 탑승을 규제한 일도 있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종교, 인종를 이유로 한 반유대주의가 극단적 민족주의, 백인우월주의와 뒤섞여 극렬로 치닫고 있다. 유대인을 겨냥한 온라인 언어폭력과 코로나19는 유대인이 퍼뜨렸다는 등의 음모론이 주를 이루다 가자 지구 전쟁을 계기로 폭력 사건으로 비화했다. 지난 7월 멜버른 유대교 종교시설 방화와 유대인 식당 습격, 지난 9월 백인우월주의 단체의 멜버른 유대인 캠프 공격 등이 그 예다.

시걸 특사는 7월 방화 사건 직후 반유대주의 근절에 동참하지 않는 대학들에 대한 자금 지원을 축소 또는 중단하고, 반유대주의 조장이 의심되는 언론보도와 예술단체에 대한 통제에 나서야 한다는 정책을 냈다. 이 정책은 언론과 예술의 자유 침해 우려 때문에 즉각 실행되지는 않았다.

시걸 특사는 ABC라디오 인터뷰에서 "정책 계획에서 설명했듯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지난 7월 정책에 따라) 일부 조치가 있었으나 더욱 가속해야 한다"고 했다. 야당인 자유당 당수 수잔 레이는 앨버니즈 총리가 진즉 시걸 특사의 정책을 시행했어야 했다면서 "총리는 호주 유대인 공동체의 안전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수사당국은 용의자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호주 매체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사망한 용의자의 이름은 사지드 아크람이고 입원 중인 아들의 이름은 나비드 아크람이라고 보도했다. 부친 사지드 아크람은 1998년 학생 비자로 호주에 입국한 뒤 혼인을 통해 배우자 비자를 다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당국은 이들의 자택에서 총기 6정을 압수했다. 부친은 총기 소지 허가증을 갖고 있었다.

한편 15일 로이터에 따르면 앨버니즈 총리는 개인의 총기 보유 수 제한, 정기 재검토 등 관련 법을 강화하는 것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시드니모닝해럴드는 이와 별도로 별도로 이번 사건 발생 지역인 뉴사우스웨일즈 주의 의회가 크리스마스 전 총기 규제 법안 통과를 위해 긴급 소집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김종훈 기자

국제 소식을 전합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