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밀라노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베르사체, 프라다 등 주요 글로벌 브랜드의 본사가 위치해 '세계 패션 수도'로 불리곤 한다. 이달 밀라노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 전세계 선수단이 선보인 패션이 관심을 모은 이유다. 개막식에 선수들이 입고 등장하는 단복은 단순한 단체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국가의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를 담아낸 '소프트파워'의 주역이다.
이번 개막식에서는 미국의 랄프로렌, 캐나다의 룰루레몬, 이탈리아의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 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들이 단복을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몽골에 시선이 쏠렸다. 몽골의 단복은 2024 파리 올림픽에도 화제가 됐는데 올해 몽골 브랜드 '고욜'은 추운 자국의 날씨를 버틸 수 있게 도와 준 전통의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주목 받았다.
올해로 16번째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몽골 국가대표팀은 아직까지 단 한 개의 메달도 따지 못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러나 "글로벌 패션의 수도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대표단은 말을 탄 전사들, 유르트(중앙아시아의 전통 가옥)의 유목민들, 그리고 역사상 가장 방대한 제국의 힘을 반영한 캐시미어 컬렉션을 입은 이들이었다"고 극찬했다.

이번 대회 알파인 및 크로스컨트리 스키에 출전한 몽골 선수단은 붉은색과 노란색 실크 장식과 뿔 무늬 자수가 놓인 화려한 파란색 캐시미어 로브를 입고 개막식에 등장했다. 이는 몽골이 전성기를 누리던 13~15세기 주로 입던 전통의상 '델(Deel)'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델은 수천 년 동안 몽골 유목민들의 삶과 함께해 온 옷이다. 단순히 몸을 가리는 옷을 넘어 거친 초원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입는 텐트'같은 역할을 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델은 패셔너블하면서도 기능성을 갖춘 캐시미어 단복으로 탄생했다. 모자 역시 과거 몽골 전통을 따랐다. 몽골 전사들이 쓰던 머리장식을 연상시키는 이 모자는 적의 화살을 막고 몽골 초원의 매서운 추위를 견디기 위해 착용한 뿔 모양을 그대로 살렸다.
디자인 외에도 몽골 단복의 큰 특징은 소재, 즉 몽골산 캐시미어다. 몽골인들은 수세기 동안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캐시미어로 몸을 감싸왔다. 특히 염소로부터 세계 최고 품질의 캐시미어 원료를 확보한다. 오늘날 전 세계 캐시미어의 4분의 1 이상은 몽골에서 생산된다.
이 단복은 패션을 통해 장인 정신과 문화적 정체성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막식을 앞두고 몇 주 전 단복이 공개되자 패션 전문 잡지인 '보그'도 호평했다. 미국의 디자인 매거진 '마이모던멧'은 "이 유니폼은 강한 정체성과 미적 명확성으로 온라인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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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복을 제작한 의류업체는 '고욜'이다. 울란바토르에 본사를 둔 고욜 캐시미어는 2005년 설립됐다. 2020년 몽골 경제 다각화를 위해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ITF)가 투자한 500만달러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이후 고욜은 세계에 브랜드를 알리고자 분투했다. 특히 단복 공개를 앞두고 몽골의 올림픽 선수 3명과 코치들을 불러 수차례 피팅을 진행했다.
회사 측은 특히 이번 단복 가운데 모자에 공들였다. 고대 유목민 문화를 그대로 살리고자 200가지가 넘는 몽골인들의 전통 모자를 샅샅이 살피기도 했다. 지난달 컬렉션이 온라인에 공개되자마자 주문이 폭주했다.
고욜은 품질 유지를 위해 약 800달러(약 115만원)에 달하는 맞춤형 '델'을 주문하는 고객들에게 직접 매장을 방문해 치수를 잴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맞춤복 가격이나 몽골까지 여행비가 부담스러운 소비자도 적잖다. 이들이 기성품으로 눈을 돌리면서 비니, 스카프, 스웨터 등도 인기 상품이 됐다.
아리우나 비암바쿠 최고경영자(CEO)는 "몽골은 깊은 역사적 뿌리를 가진 농업과 원자재가 풍부한 나라"라며 "우리는 원자재 공급업체일 뿐만 아니라 완제품 제품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