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탈퇴하는 미국...빈자리 채우는 중국

유네스코 탈퇴하는 미국...빈자리 채우는 중국

김하늬 기자
2026.05.03 06:00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 향후 글로벌 교육·AI 규범, 누가 쓰나

[편집자주] 트럼프 2기 출범, AI의 발달, 기후변화 등 글로벌 사회의 불확실성이 커졌습니다. 매주 일요일 오전, 깊이 있는 시각과 예리한 분석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세상을 헤쳐나갈 지혜를 전달합니다.
[워싱턴=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 하원 본회의장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집권 2기 첫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을 하고 있다. 2026.02.25. /사진=민경찬
[워싱턴=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 하원 본회의장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집권 2기 첫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을 하고 있다. 2026.02.25. /사진=민경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말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공식 탈퇴를 선언함에 따라, 미국이 남긴 외교적 공백을 중국이 메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브루킹스 연구소 산하 보편교육센터의 에밀리 마르코비치 모리스 연구원과 브라운 교육정책센터의 마이클 핸슨 선임 연구원이 공동 집필한 이 보고서는 미·중 간 권력 이동 양상을 분석했다. 보고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국제기구 탈퇴를 통해 소프트파워 외교에서 후퇴하고 있다고 짚었다. 반면 중국은 외교·국내 정책을 통해 소프트파워 전략을 강화하며 미국이 비운 자리를 차지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뉴시스] 천췬 유네스코 교육담당 사무차장. 중국인 두 번째 유네스코 차장이다. (출처: 바이두) 2026.04.07.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천췬 유네스코 교육담당 사무차장. 중국인 두 번째 유네스코 차장이다. (출처: 바이두) 2026.04.07. *재판매 및 DB 금지

이러한 흐름은 최근 상징적인 인사 조치로 구체화됐다. 유네스코는 지난 4월 3일, 중국의 천췬 전 화동사범대 교수를 차기 교육 담당 사무차장으로 임명했다. 천췬 교수는 "학문적·행정적 리더십 분야에서 30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이 수십 년간 주도해온 세계 교육 거버넌스에서 주도권이 이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된 이후 미국은 "미국의 이익에 더 이상 부합하지 않는다"는 기조 아래 66개 국제기구에서 탈퇴해 왔다. 여기에는 전쟁·재난 등 긴급 상황에 처한 아동의 학습권을 지원하는 '에듀케이션 캐노트 웨이트(Education Cannot Wait)' 등 교육 관련 유엔 기구도 포함된다.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교육·AI 거버넌스의 주도권 이동 가능성을 조망했다.

중심축의 변화…미국은 하드파워 전략 · 중국은 소프트파워 확장

미국은 오랜 기간 소프트파워를 외교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하버드대 교수이자 정책 전문가인 조지프 나이(Joseph Nye)가 1990년대에 처음 제시한 개념인 소프트파워란, "강압이나 대가 없이 매력을 통해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뜻한다. 미국은 전 세계에 도서관과 인터넷 접근을 제공하는 '아메리칸 스페이스(American Spaces)' 프로그램, 국제 교육 교류, 해외 영어 교육 지원 등 다양한 교육 이니셔티브를 통해 이를 실현해 왔다.

반면 하드파워는 경제 제재나 군사 작전처럼 힘을 통해 원하는 결과를 달성하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소프트파워에서 하드파워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국제기구 탈퇴가 그 핵심 행보 중 하나라고 분석한다.

2010년 6월 호주에 처음 개설된 멜버른 공자학당 현판식에 참석한 시진핑 당시 부주석. /사진=포린폴리시 foreignpolicy.com
2010년 6월 호주에 처음 개설된 멜버른 공자학당 현판식에 참석한 시진핑 당시 부주석. /사진=포린폴리시 foreignpolicy.com

반면 중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관광, 예술, 문화 진흥 등 소프트파워 이니셔티브를 꾸준히 추진해 왔으며, 그 중심에는 교육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논란이 많은 사례가 공자학원(CI)이다. 주로 대학과의 협력을 통해 운영되는 공자학원은 현재 160개국 이상에서 활동하고 있다. 다만 미국에서는 2018~2021년 의회가 공자학원의 감시 활동 및 영향력 공작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면서 대부분 철수했다. 중국은 공자학원과 연계된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내 초·중등학교(K-12)로도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으나, 그 규모는 대학 수준에 비해 훨씬 작았다.

중국의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BRI)는 중국의 대표적인 소프트파워 수단으로, 주로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사업을 지원한다. 여기에는 교육 관련 부속 프로그램도 포함된다. 보고서는 '일대일로 지역 국내외 과학기구 연합(ANSO)'이 일대일로 참여국의 과학·기술 역량 강화를 지원하며 학술 교류와 교육 훈련 기회를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중국이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전역에서 국제 장학금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대학 간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젊은 인재들을 유치하고 있다고도 분석했다.

미국은 교육을 줄이고, 중국은 교육을 키운다

두 국가의 외교 노선 차이는 국내 교육 정책에서도 나타난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6회계연도 예산안에서 연방 교육예산을 15%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행정부는 이를 교육부가 "책임감 있게 마무리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2025년 통과된 '원 빅 뷰티풀 빌(One Big Beautiful Bill Act)'은 공교육 예산이 삭감되는 상황에서도 새로운 세금 지출을 사립학교 바우처 프로그램으로 돌리는 연방 사립학교 바우처 제도를 도입했다. 미국 고등교육 기관의 주요 재원이었던 연방 연구비 지원도 지난 1년간 대폭 삭감 대상이 됐다.

보고서는 이러한 조치들이 미국 교실과 강의실 전반에 파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미국 고등교육의 매력도 자체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교육기관에서 공부하는 외국 유학생은 미국 소프트파워의 가장 가시적인 표현인 동시에 미국의 주요 수출 품목 중 하나인데, 미국이 교육 투자를 줄이고 해외 학자들에게 배타적인 신호를 보내면서 중국 등 경쟁국에 유리한 환경을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 수는 2019~2020학년도 약 37만2000명에서 2024~2025학년도 약 26만6000명으로 줄었다.

[베이징=신화/뉴시스] 시진핑(오른쪽 가운데) 중국 국가주석이 10일(현지 시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리원 주석이 이끄는 대만 국민당(KMT) 대표단과 회담하고 있다. 2026.04.10. /사진=민경찬
[베이징=신화/뉴시스] 시진핑(오른쪽 가운데) 중국 국가주석이 10일(현지 시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리원 주석이 이끄는 대만 국민당(KMT) 대표단과 회담하고 있다. 2026.04.10. /사진=민경찬

중국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여 년간 공교육 지출을 꾸준히 늘려왔다. GDP 대비 공교육 지출 비율은 1998년 3% 미만에서 2020년 4% 이상으로 높아졌으며, 이 4% 기준은 국가 정책으로 명문화돼 적극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참고로 미국의 공교육 지출은 GDP의 5% 수준이나, 주(州)마다 차이가 있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중국 정부가 공공 예산으로 고등교육에 투입한 금액은 약 5390억 달러에 달한다.

보고서는 중국이 이러한 투자를 바탕으로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특화 교육과 직업교육 등 고성장 분야를 집중 육성하며 노동력 경쟁력을 높이고 중산층을 확대해 왔다고 분석했다. 대규모 재정 투입이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고등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반이 됐다는 것이다.

AI 시대 청소년 보호, 미·중 접근법도 갈린다

양국의 차이는 AI와 디지털 규제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브루킹스 연구팀은 짚었다. 특히 청소년 보호 문제는 향후 국제 교육질서에서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미국에서는 아동·청소년 온라인 안전과 AI 규제를 둘러싼 논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연방 차원의 일관된 입법은 지지부진하다.

 아동 온라인 안전법(Kids Online Safety Act)은 13세 미만 아동의 소셜미디어 계정 생성을 금지하고, 이를 허용한 소셜미디어 기업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사진은 2024년 1월 31일 워싱턴 의사당 인근 집회에서, 소셜미디어로 피해를 입은 가족들의 사진을 참가자들이 들고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모습/AP=뉴시스
아동 온라인 안전법(Kids Online Safety Act)은 13세 미만 아동의 소셜미디어 계정 생성을 금지하고, 이를 허용한 소셜미디어 기업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사진은 2024년 1월 31일 워싱턴 의사당 인근 집회에서, 소셜미디어로 피해를 입은 가족들의 사진을 참가자들이 들고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모습/AP=뉴시스

다수의 최고경영자(CEO)들이 미성년 이용자 보호 미흡으로 청문회에 소환됐고, 아동 온라인 안전에 관한 초당적 법안은 2024년 상원을 통과했음에도 하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아동을 위한 연방 차원의 AI 거버넌스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파편화된 주(州) 단위 규제가 가장 현실적인 대응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주 정부의 AI 관련 입법을 막는 행정명령을 발동한 상태다.

반면 중국은 청소년을 디지털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신속하고 단호하게 움직였다는 것이 브루킹스 연구팀의 분석이다. 2025년 4월 중국 사이버공간관리국(CAC)이 도입한 '미성년자 모드(minor mode)'는 부모가 자녀의 모바일 기기 사용 환경을 세밀하게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로, 하루 사용 시간 제한,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접속 차단, 연령 부적합 콘텐츠 필터링 기능 등을 담고 있다.

이는 앞서 도입된 온라인 게임 과몰입 규제 등 사이버공간 내 미성년자 보호 국가 규정의 연장선이다. 최근에는 인간의 성격을 모방하는 AI 챗봇·동반자형 서비스, 이른바 '의인화 AI(anthropomorphic AI)' 사용 제한 조치도 발표됐다. 아동과 성인 이용자 모두의 AI 중독 및 관련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유네스코 이후, 누가 교육의 규칙을 쓰게 될까

브루킹스 연구소 보고서는 미국이 2026년 12월 31일 유네스코를 공식 탈퇴하면 다른 나라들과 공유하고 배울 수 있는 중요한 협력의 장을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AI는 전례 없는 기술이며 국경을 초월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단독 행보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네스코가 아동·청소년·사회를 위한 AI 보호 방안을 선제적으로 논의하고 책임 있는 프레임워크를 마련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천췬 교수가 유네스코 교육 수장을 맡게 되면 AI 논의가 중국의 기술 규제 경험을 반영하게 될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보고서는 미국이 중국의 AI 챗봇 동반자 규제, 유럽연합(EU)의 미성년자 타깃 광고 제한 입법, 호주의 16세 미만 소셜미디어 금지 조치 등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배울 것이 있다고 촉구했다. "국제사회는 소셜미디어를 청소년에게 안전하게 설계하는 데 실패했고, 그 결과는 학습·정서 등 여러 발달 지표에서 우려스러운 영향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소셜미디어라는 '실패한 실험'에서 반드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두 연구원은 강조했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긴 호흡의 게임"이라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교육 투자의 성과는 선거 주기나 대통령 임기가 아닌 수십 년과 세대를 단위로 측정되며, 지금 내려지는 선택들이 글로벌 학습의 규칙을 누가 쓸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유네스코가 2030년 이후 지속가능발전목표(SDG) 교육 의제를 계획해 나가는 가운데, 중국은 핵심적인 역할을 맡을 위치에 서 있는 반면 미국은 그렇지 않다고 보고서는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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