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쿠바 정권 교체 가능성 암시"

미국 항공모함 니미츠호가 20일(현지시간) 쿠바 인근 카리브 해에 나타났다. 같은 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쿠바의 혁명 지도자였던 라울 카스트로 전 대통령을 형사 기소했다. 쿠바 측은 대화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냈다.
뉴욕타임스(NYT) 등 보도에 따르면 니미츠 호를 필두로 하는 항모전단은 20일 카리브해 남부에 진입했다. 익명을 요구한 트럼프 행정부 소식통은 항모전단이 카리브해에 며칠 머물면서 쿠바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소식통은 항모전단이 베네수엘라 때처럼 대규모 군사작전을 수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트럼프 행정부는 95세인 카스트로 전 대통령을 미국인 살해 공모, 살인 등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카스트로 전 대통령이 국방장관 시절이던 1996년 발생한 민간 항공기 격추 사건을 기소 명분으로 삼았다.
당시 쿠바군이 쿠바계 미국인 망명단체 '구조형제단' 항공기를 공격해 미국인 3명 포함 4명이 사망했다. 구조형제단은 보트를 타고 미국으로 향한 쿠바 난민들의 위치를 미국 해안경비대에 알려 난민들이 구조되도록 도움을 줬다. 이 과정에서 구조형제단 항공기들이 경고를 무시하고 쿠바 영공에 진입해 반정부 활동을 독려하는 선전물을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쿠바군은 구조형제단 항공기 3대 중 2대를 격추했다.
미국이 30년 전 사건으로 카스트로 전 대통령을 기소한 것은 쿠바 정권 교체를 노린 수로 해석된다. 카스트로 전 대통령은 형 피델 카스트로, 동료 체 게바라와 함께 1959년 쿠바 혁명을 이끈 인물이다. 현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을 차기 지도자로 낙점한 것도 카스트로 전 대통령이다. 그는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막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NYT는 "니미츠 호 카리브해 도착이 카스트로 전 대통령 기소와 정확히 같은 날 이뤄진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제임스 트리파니 호주 웨스턴 시드니 대학 역사·국제관계학 부교수는 더컨버세이션 기고문에서 "카스트로 전 대통령 기소는 개인에 대한 정의 구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며 "67년 간 미국의 주요 적대국이었던 쿠바의 정권 교체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했다.
트리파니 교수는 최근 존 랫클리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정보당국 수장을 비롯해 쿠바 측 고위 관계자들과 회담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랫클리프 국장은 상당한 수준의 경제 개혁과 중국, 러시아의 정보 수집 활동을 차단할 것 등을 쿠바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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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압박이 고조되자 쿠바는 "대화를 원한다"는 입장을 냈다. 에르네스토 소베론 구스만 주유엔 쿠바 대사는 이날 NYT 인터뷰에서 "쿠바는 미국과 모든 상황에 대해 대화할 용의가 있다"며 "호전적인 수사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NYT는 현직 쿠바 관료가 인터뷰 요청에 응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경제, 정치 개혁 요구를 수용하라는 미국 측 입장에 대해 소베론 구스만 대사는 "미국으로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훈계를 들을 생각은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한편 니미츠 호는 1975년 취역해 현재까지 최장수 항모로 활동 중이다. 원래 이달까지 활동하고 퇴역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미국 항모 공급이 늦어지는 상황에서 이란 전쟁으로 인한 항모 전력 수요가 급격히 커진 탓에 내년 3월로 퇴역이 미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