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 지인의 혼사로 경기 부평에 다녀왔다. 오류동을 지나며 유한공업고등학교가 눈에 들어오자 얼마전 읽은 '유일한 평전'(조성기 지음)이 생각났다. 어린 나이에 홀로 유학을 하면서 기업보국의 신념으로 유한양행을 설립했고, 기업은 키워준 사회의 것이라면서 사회에 환원한 거의 반세기 전의 그의 업적은 사회책임투자(SRI)가 강조되고 있는 현 시점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척박한 땅에서 맨주먹으로 세계적 기업을 일으키던 그런 '기업가정신'이 요즘은 많이 사라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우선은 경제규모가 커지고 복잡화되고 안정화되어 수익창출의 기회가 줄어든 데다 사회의 변화속도가 너무 빨라 투자리스크가 커졌다는 지적에 수긍이 간다. 투자 하나가 거대그룹의 명운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많은 기업가를 움츠리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업인 대상의 한 조사결과를 보면 '기업가정신' 위축의 원인으로 노사갈등과 과도한 정부규제, 그리고 소위 '반기업정서' 등이 기업인 스스로의 의지 부족보다 더 크게 지적되고 있었다. 이해는 가면서도 혹시 '남의 탓'으로 돌리는 측면은 없는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민간부문의 '기업가정신'처럼 공직사회에는 '공무원(관료)정신'이 있다. 그것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과 애정에 기초하고, 맡은 일을 열과 성을 바쳐 이뤄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일을 완성하고, 일과 관련해 지적받는 것을 엄청난 수치로 느낄 정도로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는 그런 마음가짐이다.
이런 '공무원정신'도 요즘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사회적 가치가 전반적으로 다원화되면서 공직에 대한 매력이 감소하는 추세에 더하여 일부 잘못된 사례가 공무원 전체의 문제로 치부되면서 폄하되기도 하고, 사회 전반적인 물질 우선의 풍조가 공직사회를 지켜주는 '명예'라는 가치에도 많은 상처를 준 것이 사실이다.
근 공무원시험의 경쟁률이 치솟고 있는데 그 원인은 젊은이들이 공무원을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언론보도에는 씁쓸함마저 느껴진다.
더구나 정책에 대한 잦은 사후 감사와 조사는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불확실성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동태적 환경 하의 정책판단에 있어서 사후적 제재의 두려움은 '공무원정신'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공직자의 보이지 않는 부작위에 의한 손실'을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에 귀가 기울여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전적으로 외부환경 탓으로 돌리는 데 대해서는 너무 꺼림칙하다는 느낌이 든다. 공직자 스스로 자신의 직업정신을 다시 추슬러 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이란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데는 봄바람처럼 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가을서릿발처럼 엄히 하라는 말인데, 오늘의 현실에서도 가슴에 와닿는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루어내는데 기여한 '기업가정신'과 '공무원정신'은 훼손되어 버리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우리의 '기업가정신'과 '공무원정신'이라는 것도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발전을 이루어냈기 때문에 평가를 받은 것이 아닌가.
이제는 기업가와 공직자들은 21세기에 걸맞은 한 차원 높은 '기업가정신'과 '공무원정신'으로 재무장함으로써 새로운 도전을 이겨내 성숙한 한국사회를 이루어 내는데 기여해야 한다. 많은 국민은 그런 기업인과 공직자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