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으로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월가에 다시 탐욕의 기운이 꿈틀대고 있다.
국민 혈세인 천문학적 구제금융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긴 월가의 금융기관들이 위기후 기회라는 호기를 맞아 다시 돈에 대한 끝없는 탐욕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분명 가해자인 이들의 신분이 위기 해소를 위해 불가결한 해결사로 뒤바뀌며 또다른 버블 형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진다.
◇'민관펀드는 세금 수천억달러를 월가에 넘겨주는 시도'= 금융 위기의 최대 피해자가 국민이라면 가해자인 금융기관들의 신분은 어느새 최대 수혜자가 됐다. 미 은행들은 현재 사상 최저의 비용으로 자금을 끌어와 높은 예매 마진을 누린다. 원활한 시중 대출을 위해 이뤄진 정부의 각종 구제책으로 은행들은 수수료 수익만도 짭짤하다.
`대마불사`를 위한 정부의 부실자산 처리계획이 대표적 사례중 하나이다. 은행들은 골치아픈 부실자산을 정부가 조성하는 '민관펀드'(PPIF)에 매각하고 나면 금세 우량은행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더욱이 매칭펀드 형식으로 조성되는 펀드의 민간 부문 참여자는 6배정도로 예상되는 높은 수익성 보장으로 발표직후부터 핌코, 블랙록, 알리안츠 등 자산운용사들의 참여 경쟁이 뜨겁다. 파생상품 버블의 장본인들이 다시 수익이 있는 곳에 덤비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26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PPIF는 납세자들로부터 수천억달러를 강탈해 월가에 넘겨주려는 시도라고 비꼬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폴 크루그먼 등도 비판에 한 목소리이다.
삭스 교수는 2주만에 은행주가 50% 가량 상승해 납세자들이 이득을 본 듯한 착각이 들지만 실제로 납세자들은 자신들의 돈으로 주가를 부양하느라 손해를 입었고, 은행들이 수혜자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은행의 부실자산을 시장 가격결정 방식으로 사겠다는 것은 또 하나의 '넌센스'라고 조롱했다. 민관펀드에 참여할 민간 투자자들이 바로 이 펀드에 부실자산을 팔 당사자들인 때문이다.
◇은행들 구제자금 반환추진…'정부 간섭 싫다'=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이 정부 구제자금을 조기상환하겠다고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현 재무 상태에 비춰 가능하지만 BoA는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즉 정부의 규제와 간섭이 싫어 반환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에대해 미 재무부의 고민도 커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능력도 안되는' 금융기관들의 '부실'이미지가 또다시 부각돼 주가가 급락하는 등 제 2의 금융위기 우려를 낳을까 고심한다.
메리디스 휘트니 전 오펜하이머 애널리스트는 이와 관련, 웰스파고나 씨티는 구제자금 조기상환이 힘들 것이며 BoA 역시 조기상환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무디스는 이날 BoA 발표직후 또다시 구제 요청 가능성을 제기하며 BoA,웰스파고의 신용등급을 하향했다.
독자들의 PICK!
◇'버블' 터진지 얼마나 됐다고…'월가는 저금리에 침흘리는 개'= 런던 블루크레스트의 펀드매니저 조지 쿠퍼는 이를 두고 연준을 '저금리'라는 먹이를 주는 이반 파블로프 교수에, 월가는 군침을 흘리는 '개'에 비유하며 조롱했다.
쿠퍼는 배고픈 개에게 먹이를 주듯 저금리 환경을 조성하면 월가는 항상 그랬듯이 레버리지를 일으키고 자산 버블을 만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1930년대 '대공황'을 초래한 원인이 20년대의 저금리와 유동성 확장이었다"면서 "전례없는 유동성 공급이 또 다른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월가 돈에 지배돼온 정계…이젠 월가를 지배해야"
25일 워싱턴에서는 월가의 '탐욕'과 무관한 비영리기관이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소비자교육재단(CEF) 등 비영리 기관들이 공동발표한 이 보고서는 "금융업의 주업무가 '도박'으로 변질되면서 실물 경제의 상품과 서비스가 판돈으로 대체됐다"면서 "투기꾼들이 돈을 찾아가기 시작하자 드디어 판돈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월가는 2996명의 로비스트들을 통해 워싱턴 정가에 17억달러를 뿌렸고 정부 관료들에게 준 돈도 34억달러에 달한다. 이중 골드만삭스가 2600만달러, 씨티그룹이 2000만달러, JP모간도 1600만달러를 기여했다.
보고서는 "월가는 과거 정부와 정치권에 51억달러를 준 대가로 그 이상의 이익을 챙겼다"면서 "'대공황' 직후 금융시스템 회복을 위해 도입한 각종 규제의 대부분이 지난 10년간 해체됐다"고 전했다.
이어 "지난 2000년 캘리포니아주의 에너지 위기, 엔론의 회계부정 사태 등 여러 차례 경고음이 울렸음에도 국가의 법과 규제시스템은 월가 사기꾼들의 부정행위를 묵인해왔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월가 인사들의 정책 참여를 제한해 '월가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월가를 지배'해야 한다"고 꼬집으면서 헤지펀드, 금융파생삼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덩치 키우기에만 주력해온 '메가뱅크'를 해체시켜 투자은행(IB)과 상업은행의 경계를 더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