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긴 아니라고 하던데…."
"그럴리가. ○○은행에서 직접 확인한 건데…."
"그래? 그럼 도대체 몇 개라는 거야."
"확보한 리스트 좀 교환해보자."
금융감독원과 은행권을 출입하는 기자실에서 요즘 흔히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삼삼오오 모여 은행 빚이 많은 45개 대기업그룹(주채무계열)을 입에 올리곤 한다. 이른바 '주채무 리스트'다.
채권은행의 재무구조평가 결과 합격과 불합격이 명확해지자 기자들의 촉수도 한층 날카로워졌다. 기업의 생존이 걸린 문제인 만큼 금융당국과 채권은행 관계자들에게도 함구령이 내려진 탓이다.
불합격으로 분류된 그룹들은 주채권은행과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체결해야 한다. 약정체결은 곧 계열사 매각, 인력감축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사실상 '살생부' 명단인 셈이다.
기업들의 발길도 바빠졌다. 최근 당국의 기류가 채권단 '자율'에서 '강한 압박'으로 변한 것을 감지한 탓이다. 몇몇 그룹 관계자는 "주채권은행에서 별다른 얘길 못들었는데 우리가 왜 리스트에 들어가 있냐"고 당혹해하며 역으로 기자들에게 정보를 들으려 한다.
불합격대상은 일찌감치 결정됐다. 그런데 채권은행은 약정체결 대상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 기업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탓이다. 최근 만난 한 은행장은 "요새 경제상황이 조금 나아졌다고 약정을 맺지 않고 버티려는 곳이 적잖다"고 하소연했다. 약정 체결까지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 말이다.
정치·사회 분야에서 불확실한 '리스트'가 난무해 혼란스런 요즘이다. 거기에 '주채무 리스트'까지 더해졌다. 언론·기업·은행·금융당국. 정보를 빼내려는 쪽과 감추려는 측, 살려고 발버둥치는 쪽과 죽이려는 자의 지리한 싸움이 계속될수록 우리 사회는 불확실성이라는 적과 끊임없는 두뇌게임을 해야 한다. 웃지 못할 일이다.
멀쩡한 기업이 '리스트'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과감하고 신속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또다른 이유다. 금융당국이 버티기로 일관하는 곳에는 신규자금을 끊으라고 은행장들을 압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확실성은 경제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