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사상 최대폭 약가인하 방침을 공식 발표하던 12일 오전 11시. 제약사 사장단은 단체버스를 타고 서울 계동 보건복지부를 항의 방문했지만 곧바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봉쇄된 출입문과 보안요원들에 막힌 후 진수희 장관에게 면담의사를 전달했지만 "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복지부가 이날 발표한 약가인하 조치는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적용된다. 제약산업 110년 역사상 처음으로 제약사 사장단이 거리로 나왔지만 복지부를 움직이진 못했다.
보건복지부가 가정상비약 슈퍼판매부터 의약품 재분류, 약가인하까지 이익단체의 반발에 막혀 십년 가까이 표류하던 보건의료정책들을 '작정'하고 밀어 붙이고 있다.
바뀌어야 마땅하지만 이건 누가 반대해서 안되고, 저건 누가 손해봐서 안된다며 미뤄왔던 제도개선 방안들을 근 몇 개월 사이 쏟아내며 '개혁'을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설마'했는데 손 써볼 틈도 없이 바뀌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항변이다.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진단다.
복지부는 올 초 오래돼 쓸 만큼 쓴 영상장비(MRI·CT) 등의 가격을 인하하고, 조제일수 만큼 인정해주던 의약품관리료를 대폭 깎았다. 내용연수가 다 된 장비는 검사비를 적게 받는 게 맞고, 6일치를 처방하든 30일치를 처방하든 관리에 드는 비용이 크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문제제기는 수년전부터 있었지만 병원과 약사들 반대 때문에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일이다.
가정상비약 슈퍼판매는 국민 80% 이상이 찬성한다는 설문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복지부가 입에 담기조차 어려워했던 사안이다. 약사들의 반발에 부딪쳐 "안전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하지만 올 초부터 본격 논의되기 시작하더니 지난달부터 박카스 등 일부 일반의약품이 의약외품으로 전환, 슈퍼에서 팔리고 있다. '일사천리'다.
10년 간 단 한번도 논의되지 않았던 의약품 재분류는 올해 처음 시도돼 올해 말 완료된다. 시간이 흐르며 부작용 사례가 보고됐지만 여전히 일반의약품에 머물러있거나, 안전성이 입증됐음에도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는 의약품들이 많지만 지금까지는 의사와 약사 눈치만 보느라 단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던 사안이다. 일반약이 전문약이 되는 건 약사가 반대하고, 전문약이 일반약이 되는 건 의사들이 싫어한다.
특허만료 의약품과 복제약 일괄인하 방침도 놀랄만한 사안이다. 우리나라 복제약값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어차피 복제약일 뿐인데 빨리 만들면 가격을 더 높게 쳐주는 제도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다. 제약사는 물론 다양한 방식의 리베이트로 나눠먹는 의사와 약사 모두 반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PICK!
이처럼 복지부를 달라지게 만든 배경에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때가 됐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건강보험 재정이 고갈위기에 이르러 지금 체계를 계속 유지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꾸지 않으면 안될 때라는 얘기다.
하지만 아무나 해내진 못했을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근태, 유시민, 손학규, 전재희 등 정치인이 장관을 맡으며 논란이 될 법한 일들은 손대지 않은 채 임기를 넘긴 측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재선 의원이면서 임기 1년이 채 되지 않는 동안 약사와 의사, 병원 모두에게 소송당한 진수희 장관을 다시 보게 만드는 이유다.
진 장관은 "내 정치일정을 제쳐두고라도 당면과제를 해결 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4월 총선까지 걸었다. 정치인 장관의 '또 다른' 승부수가 어떤 결과를 낳을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