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PEF 스텔스 국민연금 (下)

국민연금의 사모펀드(PE) 출자 내역을 지금보다 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국민의 연금을 활용한 자산증식은 공공재 영역이라는 이유에서다. 시장 변화에 따라 선진국 수준의 공시 제도가 필요하단 평가가 나온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미국 최대 공적연기금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 캘퍼스(calPERS)의 최근 2년동안 PE에 투자한 내역을 살펴보면 장부가치와 시장가치가 0인 투자 건이 있다.
투자 내역에는 펀드의 이름과 함께 장부가치(Book Value)와 시장가치(Market Value) 변화가 적시돼 있다. 장부가치가 0인데 시장가치에 금액이 기록된 건은 자산을 상각하고 배당금을 수령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대로 장부가치에 금액이 기록돼 있는데 시장가치가 0인 건은 대손상각한 것으로 분석된다. 두 금액을 비교하면 어떤 펀드가 수익을 냈는지, 연간 얼마를 벌었는지 손익과 수익률 등을 추산할 수 있다.
캘퍼스의 연간 투자 보고서에는 90일 이하의 유동성 높은 단기 투자 내역도 기록돼 있다. 만기일, 주식수와 주당 액면가, 투자금, 투자 가치 변동 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밖에도 국제통화, 채권 투자, 주거용 모기지 대출 현금 흐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자료 항목은 시장 관계자가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어 제한적인 국민연금의 정보 공개와 비교된다.
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의 투자 내역을 사모펀드 출자사업 공고와 선정결과를 통해 대략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이마저 진행하지 않았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홈플러스가 법정관리에 돌입하면서 국민연금의 신규 출자 여력이 일시적으로 제한된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이 이미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 IMM PE등 국내 PE에서 맡긴 자금을 운용 중이고, 글랜우드pe에는 수시 출자를 통해 펀드레이징을 실시하고 있어 출자사업이 불필요했다는 분석도 있다.
운용사에 투자한 돈이 어디로 흘러 들어갔는지까지는 아니어도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를 위해 투자한 자산의 시장가치 변화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미국의 13F 제도처럼 분기별 공시를 목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운용사의 입장을 과도하게 반영해 투자 세목을 밝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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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일부 국가의 연기금처럼 투자 내역을 상세하게 공개할 수 있는 딜만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노르웨이는 북해산 원유수출관련 수입으로 생긴 자금을 관리하는 국부펀드가 국민연금을 지원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국부펀드는 중앙은행 산하 자산운용 조직인 NBIM(한국은행의 외자운용원과 같은 기관)에서 운용 중이다. 해당 펀드는 주식과 채권에 각각 60%, 40% 투자하고 있다. 사모펀드 투자는 없지만, 부동산 등 대체투자 내역은 투명하게 공개한다.
기금운용 업계 관계자는 "미국 연기금은 상장·비상장 주식시장, 벤처캐피탈, 인프라, 부동산 등 전 분야에서 출자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고, 캐나다 연금(CPPIB)의 경우 운용사별 포트폴리오 투자 비중까지 밝히고 있다"며 "운용사의 요청은 막강하지만 국내 연기금의 정보공개는 분명 취약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사모펀드(PEF) 출자 실패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손실 방어에 대한 필요성이 부각하면서 관련 규제가 변화하고 있지만, 투자 손실은 예측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은 정보 공개가 제한적이라 손실을 늦게 인식하거나 비상장사 평가 등이 불투명해 늦장 대응이 손실로 이어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10월 MBK 홈플러스 투자 실패를 인정했다. 홈플러스 인수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블라인드펀드를 통해 보통주에 투자한 295억원도 전액 손실 처리한 상태다. 이밖에도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통해 투자한 5826억원은 올해 사실상 '0원'으로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와 관련해 국민연금의 잠재 손실은 9000억원 수준으로 국회입법조사처는 추산하고 있다. 배당을 통해 약 3100억원을 회수했지만, 원금을 포함한 약 4800억원이 회생절차에 묶여있다.
국민연금의 PEF의 투자 실패 사례를 살펴보면 2020년 미국 리테일 몰 CBL & Associates가 대표적이다. 쇼핑몰을 포트폴리오로 투자한 글로벌 PEF에 국민연금이 기관투자자(LP)로 참여했다가 해당 업체가 파산보호를 신청한 사태다. 쇼핑몰 가치가 급락하면서 원금이 훼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로 오프라인 리테일 쇼핑몰이 타격을 입은 결과다.
앞서 2015년에 국민연금은 삼손 리소시스 딜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 KKR이 주도한 차입매수(LBO)에 글로벌 LP로 참여했다가 유가가 급락하면서 투자 손실을 인식했다. 당시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가 문제시됐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인 방카 몬테 파스키(Banca Monte dei Paschi di Siena SPA)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PEF 투자도 실패 사례로 꼽힌다. 이 은행은 지속적 자본확충에도 유럽 금융 규제와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주가가 오랜 기간 하락했다. 2017년 은행은 사실상 국유화 됐다. 국민연금은 간접 투자자로 참여해 손실을 입었다.
국민연금은 또 2017년 KKR와 베인캐피탈 등이 LBO 했던 글로벌 리테일 Toys R Us 딜에 펀드 LP로 참여해 투자금 대부분을 잃었다. 아마존이 등장하면서 전자상거래가 확대됐고 과도한 부채 구조로 타격을 입었다.
정치권에서는 2019년 라임펀드와 2020년 옵티머스 사태를 계기로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한 사모시장 팽창에 문제를 제기했다. '기관도 투자하는 시장은 안전하다'는 인식을 문제 삼은 것이다. 라임펀드는 당초 부실 메자닌과 비상장사 전환사채(CB), 무역금융 펀드 등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부실자산 돌려막기, 기준가 조작, 유동성 허위 관리 등 문제로 1조6000억원 이상이 환매 중단됐다.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던 옵티머스 사태 역시 부실기업 사채 투자와 관계사 자금 지원에 돈이 흘러 들어가면서 약 5000억원이 환매 중단됐다.
이후 금융당국의 사모펀드 전수조사 확대, 레버리지 관리를 위한 TRS 규제 강화, 운용사 내부통제 강화, 수탁사 감시 확대 등 제도 변화를 겪었다.
업계에선 이런 변화에도 국민연금의 투자 실패가 계속되고 있어 원론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강민욱 고려대학교 교수는 "투자 내역이 지나치게 공개되면 위험을 회피하는 쪽으로 투자하게 되고 국내 시장처럼 작은 경우 변동성이 커질 수 있어 투기 조장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며 "세계적인 추세가 공개하는 분위기라면 그 분위기를 따라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국내 시장 상황이 아직 성장 단계인지는 따져볼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