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플랫폼 전문가 칼럼] 이시종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

'전시장의 문자는 대부분 죽은 문자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중 많은 것을 읽는다.'
박물관에서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된 사실이다. 이집트 상형문자는 마지막으로 새겨진 뒤 천 년이 넘도록 아무도 읽지 못했다. 그 닫힌 문을 다시 연 것은 로제타석이라는 돌 하나였다. 열쇠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죽은 문자도 열쇠만 있으면 돌아온다.
그렇다면 열쇠가 없는 문자는 어떻게 되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는 문자가 있다. 세상 어딘가에서, 그 말을 할 줄 아는 마지막 사람이 눈을 감는다. 그와 함께 한 언어가 조용히 문을 닫는다. 어떤 문자는 더는 읽히지 못한 채, 뜻을 잃은 기호로 남는다. 한때 한 공동체의 기억과 일상을 담았지만, 이제는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이름들이다. 이들에게는 로제타석이 없다. 되살릴 원본도, 물어볼 화자도 남지 않는다. 한 번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는다. 그러니 이들은 전시장에 오를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무엇을 전시할지 정하기 전에, 무엇을 남길지부터 정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는 늘 기록된 것을 중심으로 남았다. 왕의 언어와 국가의 문서, 이긴 자들의 문장은 오래 보존됐지만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삶은 흔적 없이 지워졌다. 어떤 언어는 문자로 남았고, 어떤 언어는 끝내 기록되지 못했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인류의 역사는 이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기록은 과거를 보관하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역사 안에 남길지 정하는 일이다. 기록되지 못한 것은 그저 잊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지워진다. 기록되지 못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진다.
사라지는 것은 언어 하나가 아니다. 그 안에는 한 공동체가 세계를 기억하고 느끼고 이해하던 방식이 통째로 담겨 있다.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어 몇 개가 없어지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던 하나의 방식이 사라지는 일이다. 한글과 한국어라고 예외는 아니다. 문자와 언어도 환경이 달라지면 흔들린다. 중요한 것은 특정 문자가 우수하다고 선언하는 일이 아니라, 그 언어와 기록이 다음 세대 안에서 계속 살아 있도록 연구하고 이어가는 일이다.
왕의 언어도, 국가의 문서도, 이긴 자의 문장도 아니었던 글자가 열쇠를 남긴 적이 있다. 중국 후난성의 여성들은 여서(女書)라는 문자를 썼다. 한자를 배울 기회가 없던 이들이 자기들의 글자를 따로 지어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물려주었고, 손수건과 옷에도 그 글자를 수놓았다. 남자들도 그 존재는 알았지만, 읽지 못했고 읽으려 하지도 않았다. 여서가 학계에 알려진 것은 1982년, 그 글자를 쓰고 노래하던 마지막 여성이 눈을 감은 것은 스물두 해 뒤인 2004년이었다. 여서에 열쇠가 남은 것은 값이 나가서가 아니라, 사라지기 직전 누군가 곁에 앉아 받아 적었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운이 좋았다.
그러나 운은 대부분 오지 않는다. 문제는 이 일을 누구도 선뜻 떠맡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당장 돈이 되지 않기에 시장은 나서지 않고, 개인이나 한 연구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로 문자는 사라진다. 그리고 사라진 다음에는 되돌릴 방법이 없다. 이런 일일수록 사회가 공적으로, 오래, 함께 떠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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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 덕분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남긴다. 그러나 많이 남긴다고 남는 것은 아니다. 정보가 너무 많으면, 기억보다 망각이 빨라진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이 쌓는 일이 아니라,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연구자를 잇고 흩어진 기록을 하나로 연결하는 상설의 기반이다. 종자은행이 당장 심지 않을 씨앗까지 미래를 위해 보관하듯, 문자에도 그런 저장고가 있어야 한다. 지금 읽히지 않는 문자라도, 인류가 세계를 이해해 온 하나의 방식으로 기록해 두는 것이다.
세계문자연구소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유물을 하나 더 보관하는 공간이 아니라, 무엇이 남을 수 있을지를 사회가 미리 결정하고 책임지는 장치다. '세계의 문자를 다룬다'라는 말은 가볍지 않다. 전 세계에서 사라져 가는 문자를 모으고 연구해, 그 문자가 사라지지 않도록 붙드는 일까지 떠맡는다는 뜻이다. 기록은 과거를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미래에 무엇을 남길지 정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남기는 기록이 언젠가 누군가의 로제타석이 된다. 그리고 지금 기록되지 못한 것들은, 이미 그 문 바깥에 있다.

필자는 종합여성지 <Queen>과 월간 <문학사상>에서 편집장으로 일했으며 현재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박물관 브랜딩과 전시 커뮤니케이션, 문화콘텐츠 기획 업무를 맡고 있으며 '콘텐츠는 인간을 어떻게 움직이는가', '문화기관은 어떤 질문을 남겨야 하는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언론과 문화기관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콘텐츠와 인간의 관계를 시대 감각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