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분'
2012년 9월 17일 오전 5시경, 대구 동부경찰서 유치장에 강도상해 혐의로 구속 수감돼 있던 피의자 최갑복(당시 50세)이 '배식구'로 빠져나가는 데 걸린 시간이다. 최갑복이 빠져나간 유치장 배식구의 크기는 가로 45㎝, 세로 15㎝ 정도에 불과했다. 성인 남성의 신체 구조상 통과가 불가능해 보였지만 신장 165㎝, 체중 52㎏의 왜소한 체구였던 최갑복은 이를 뚫고 탈출에 성공했다.
배식구를 통해 탈출한 최갑복은 유치장 환기창과 경찰서 외벽을 차례로 타고 넘어 도주했다. 경찰은 탈주 후 2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부재 사실을 파악해 초기 대응 및 유치장 경계에 허점을 드러냈다.
사건 당일 대구는 제16호 태풍 '산바'의 영향으로 강풍과 폭우가 몰아치고 있었다. 어수선한 날씨 속에 '전과 25범'의 탈주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대구 시민들의 불안감은 커져갔다.
유치장 내부 CCTV(폐쇄회로TV) 영상과 경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최갑복의 탈주 과정은 치밀하고도 정교했다. 당시 최갑복은 같이 있던 유치인이 경찰에게 받아둔 상처 치료용 연고를 몰래 보관하고 있었다.
도주 직전인 오전 4시 54분경, 최갑복은 머리를 시작으로 몸 전체에 연고를 발랐다. 배식구 창살에도 윤활제 용도로 연고를 골고루 도포했다. 이어 모포 속에 베개와 옷, 책 등을 채워 넣어 마치 이불을 뒤집어쓰고 곤히 잠든 것처럼 감쪽같이 위장했다.
준비를 마친 그는 옆으로 누운 자세로 머리부터 배식구에 밀어 넣은 뒤, 몸을 좌우로 흔들며 좁은 틈을 빠져나왔다. 머리와 상반신을 거쳐 몸 전체가 배식구를 완전히 통과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3분이 채 되지 않았다.

배식구를 빠져나온 최갑복은 허리를 숙인 채 살금살금 이동해 2m 높이 환기창에 뛰어올라 매달렸다. 이어 창살 간격이 13.5㎝에 불과한 환기창 틈을 통해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다. 배식구를 빠져나오기 시작해 건물 외벽 탈출까지 걸린 총시간은 단 8분에 불과했다.
탈주 전 최갑복은 유치장에 자필 메모를 남겼다. 메모에는 '미안하다' '누명은 벗어야 하기에 선택한 길'이란 글과 함께, 자신의 강도상해 혐의에 대한 억울함을 주장하기 위해 탈주를 감행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번 사건은 근무 태만과 부실 관리 등 경찰 유치장 감시 체계의 총체적인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당시 규정상 2인 1조로 서야 하는 당직 근무 경찰관 중 1명은 면회실 조명을 끈 채 자리를 비웠고, 다른 1명은 감시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오전 6시경 감독 순찰을 도는 간부조차 유치인 수를 정확히 대조하지 않은 채 그냥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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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규정대로 인원 점검을 했다면 탈주 인지 시각을 최소 1시간 이상 앞당길 수 있었으나, 최갑복의 탈주를 최종 확인한 것은 사건 발생 2시간 30분이 지난 오전 7시 30분경이었다.
조사 결과 최갑복의 탈주는 치밀한 사전 연습의 결과로 드러났다. CCTV 분석 결과, 그는 9월 14일 배식구에 두차례나 머리를 밀어 넣었고, 15일 오전에도 머리와 가슴 일부를 밀어 넣어보는 등 세 차례나 사전 연습을 했다. 그러나 당시 근무자들 역시 졸고 있어서 이같은 상황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최갑복이 강도·성폭행 등 전과 25범의 강력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과거 탈주 전력까지 지닌 위험 인물을 이토록 허술하게 관리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실제로 최갑복은 1990년 7월 31일에도 경찰 호송버스에서 탈주한 전력이 있었다. 당시 금은방과 주유소 등 13곳에서 1억 원 상당의 금품을 털어 대구교도소로 이송되던 중, 대구 달서구 송현동 도로에서 포승줄을 풀고 헐거워진 쇠창살을 뜯어 세로 20cm 남짓한 틈으로 탈출했다가 사흘 만에 재검거된 바 있다.
또 최갑복은 2008년 중학생 성폭행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2012년 2월 출소했다. 출소 후 대구 동구 효목동의 상가건물을 임차해 불법 유사휘발유 판매를 하려다 집주인과 마찰을 빚었으며, 7월 3일 집주인 주거지에 침입하려다 몸싸움을 벌여 전치 3주의 부상을 입힌 혐의(강도상해)로 옥살이를 했다.
경찰은 즉시 공개수배를 내리고 경찰력 3,000여 명과 경찰견, 헬기, 열감지 장비 등을 동원해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다.
유치장을 빠져나온 최갑복은 멀리 가지 않은 채 한동안 경찰서 주변에 숨어 있었다. 기회를 엿보다 약 1km 떨어진 주택에서 승용차와 지갑을 훔쳐 경북 청도로 달아났다. 주유소와 편의점에서 훔친 카드를 사용한 뒤 경찰의 추격을 피해 차를 버리고 산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삼엄한 포위망을 뚫고 경남 밀양까지 이동했다.
탈주극은 엿새만에 끝났다. 9월22일 오후 최갑복은 밀양의 한 주택에 침입했다가 집주인에게 들키자 인근 아파트 옥상으로 도망쳤다. 그는 보일러실에서 빈 라면 상자를 뒤집어 쓰고 숨었는데, 상자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알아챈 경찰에게 붙잡혔다.
검거 직전 인근 농막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칼을 훔친 뒤 "죄송합니다. 비강도자 최갑복"이란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최갑복이 검거 된 이후 경찰엔 후폭풍이 몰아쳤다. 경찰은 유치장 근무자 2명을 계급 강등 조치하고, 감시를 소홀히 한 근무자 3명에게 정직 1개월 처분을 내리는 등 총 9명에 대한 징계를 단행했다. 또 유치장 배식구 창살 간격을 축소하고 CCTV를 추가 설치하는 등 시설 개선 대책도 마련됐다.
이 사건 이후에도 최갑복의 기행은 계속됐다. 최갑복은 일반도주와 준특수강도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돼 5년6개월을 선고 받았다. 복역 중인 2017년에는 대구교도소에서 같은 방 수감자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교정당국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최씨는 2018년 7월5일 출소했지만 불과 11일 만에 다시 경찰에 붙잡혔다. 대구의 한 병원에 나체 상태로 들어가 약 20분 동안 난동을 부리고, 직원을 위협하고 소화기 분말을 뿌린 혐의였다.
출소 이후 11일 동안 경찰 조사를 받은 것만 세 차례였다. 그는 "누군가 내게 마약을 투약하려 한다"며 직접 112에 신고했다. 자신의 집 주변에 세워진 차량 유리창을 파손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병원 난동 사건으로 징역 10개월을 선고 받았으나, 대법원은 최갑복에게 국선변호인을 선정하지 않은 채 재판을 진행한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 과정에서 직권보석으로 풀려났다. 이후에도 최갑복은 2020년 9월 절도로 또 징역 1년2개월을 받았다.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