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보러가서 무대위 '나'를 보고왔다

연극을 보러가서 무대위 '나'를 보고왔다

이언주 기자
2012.09.29 09:34

[인터뷰]중견배우 서영주가 21년만에 만난 데뷔작, 연극 '아워타운'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떠올린 기억이 아니라 실물로 자신의 과거를 볼 수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어쩌면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곳이 '연극 무대'일지 모른다. 오래된 좋은 연극 작품은 '무대'라는 공간 속에서 수십 년 세월동안 반복 공연되며 오히려 젊음을 되찾아가 가는데, 어떤 이는 그 가운데서 자신의 과거를 발견하기도 한다.

↑연극 '아워타운' 1막의 등교길 아이들(위)과 2막의 애밀리와 조오지의 결혼식 장면. ⓒ명동예술극장
↑연극 '아워타운' 1막의 등교길 아이들(위)과 2막의 애밀리와 조오지의 결혼식 장면. ⓒ명동예술극장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 손톤 와일더의 퓰리처상 수상작품인 연극 '아워타운'(Our Town). 이 작품을 보자마자 한 배우가 떠올랐다. 뮤지컬 배우로 잘 알려진 서영주(44·사진)다. 그는 21년 전인 1991년에 이 작품으로 정식 데뷔했다.

'중견 배우가 자신의 20대 시절 데뷔 작품을 다시 보게 된다면 어떨까'라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아쉽거나 부끄러울 수도 있겠고, 예술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도 생길 터다. 그래서 데뷔 22년차 중견배우 서영주와 함께 아워타운을 한 번 더 봤다. 그는 "20년 전엔 미처 알지 못했던 이 작품의 큰 그림을 보게 됐고,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 반갑고도 나름 숙연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연극 <아워타운>은..

1938년 초연된 이후, 전 세계에서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연된다고 할 정도로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 현대 고전연극의 대표적 작품이다. 1차 대전 직전 미국 동북부 뉴햄프셔주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그 곳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긍정적인 삶의 가치를 그린다. 작가 손톤 와일더는 관객들에게 직접 말을 걸거나 극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법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 작품에서도 관객과 직접 소통하면서 전지적 관점에서 해설을 해주는 무대감독 역할이 극 중에 등장한다. 미국에서는 무대감독 역할을 폴 뉴먼, 헬런 헌트 등 명배우들이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배우들은 자기 공연하느라 막상 공연을 자주 못 본다고 하는데, 데뷔 작품을 다시 본 소감이 어떤가요.

▶만 스물세 살 때 마을 의사의 아들인 조지 깁스 역을 했어요. 극중에선 에밀리와 결혼을 하지요. 당시엔 '우리 읍내'라는 제목으로 정일성 선생님께서 연출하셨어요. 그게 벌써 21년 전이라니 징그럽네요. 이 작품에 어떤 의미와 깊이가 있는지 전혀 모르고 연기 했던 것 같아요. 무대에서 객석이 다 보이는 정말 작은 소극장에서 공연했는데 제 첫사랑이 거기 와서 앉아있지 뭐에요. 공연 중에 눈이 딱 마주치는 바람에 그만, 대사를 잊어버리곤 30초 정도 침묵이 흘렀어요. 그때를 생각하니 정말 죽고 싶네요.(웃음) 이건 기사에 쓰시면 안돼요.

(미안해요. 이런 인간적이고 풋풋한 이야기를 당신의 팬들은 듣고 싶어 할지도 몰라요. 실수는 절대 용납 안할 것 같은 깐깐한 이미지도 좀 벗어던질 겸 이 정도는 공개하자고요. 서 배우님~)

↑연극 '아워타운'에서 달빛과 꽃향기에 푹빠진 마을사람들. ⓒ명동예술극장
↑연극 '아워타운'에서 달빛과 꽃향기에 푹빠진 마을사람들. ⓒ명동예술극장

-아워타운은 그냥 작은 마을의 사람 사는 이야기라 줄거리만 보면 별 재밌을 내용이 아닌데도 막상 공연을 보면 두 번을 봐도 재미있어요. 우리의 일상이 무대 위에서 살아있는 느낌이랄까요?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배우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보여준 것 같아요. 자신의 인생을 제3자의 눈으로 보면 뭔가 다르게 보이면서도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잖아요. 제가 보기엔 연출가 선생님이 큰 것만 잡아주고 나머지는 배우들에게 맡긴 것 같은데, 그래서 배우들의 기량이 더 살아났고 서로간의 호흡이 좋았다고 느꼈어요. 제가 할 땐 없었던 장면인데, 시작부분의 악기연주도 무척 인상적이었고요. 연주 실력은 딱 이 작품에 필요한 정도의 실력이었다고 봐요. 더 능숙하게 잘 했더라면 오히려 어색했겠죠. 작품 전반에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우리 일상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거 같아요. 아, 그리고 두 번째 봐도 재밌게 느낀 건 저랑 같이 봐서 그런 게 아닐까요?(웃음)

-네네, 그럼 같이 봐서 재밌었던 걸로. 그런데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라···. 그거 참 어려운 거 아닌가요? 배우들 개개인의 욕심도 있을 테고 서로의 기량도 다른 상황에서 쉽지 않을 거 같아요.

▶맞아요. 저도 당시엔 작품 전체를 보지 못했던 거 같아요. 그저 내 역할, 내 배역을 소화하기에 급급했었죠. 무대에서 좀 더 튀고 싶고, 잘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만 해요. 그래서 요즘은 가끔 무대에서 튀려고 하는 후배들에게 얘기를 해주는데, 잘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나중에 알겠죠. 저처럼 말이에요. 이번 작품은 대선배님들이 균형을 잡아가며 끌어줘서 그런지 젊은 배우들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간 거 같아요. 역시 좋은 작품은 정말 잘 하는 배우들이 해야 하는가 봐요.(웃음) 제가 했을 땐 연출 선생님은 대가셨지만 배우들은 경험이 적고 어려서 이런 깊이를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거든요.

그는 공연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서 많은 감정이 묻어나오는 게 느껴졌다. 무언가 신성하고 존엄한 것을 바라보는 듯한 배우의 숙연한 마음이랄까. 이 작품은 일반 관객들에게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배우들에게는 그들의 삶이기도 한 '무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분명 있었다.

◇연극 '아워타운'=연출 한태숙, 번역 오세곤, 출연 서이숙 박용수 김정영 김세동 김용선 박윤희 정운선 손진환 지영란 신덕호 이화룡 이기돈 이지혜. 10월 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 2만~5만원,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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