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史記연구 26년 김영수 작가 "동북공정 근원이 바로 사기"
동양 역사서의 근간이자 세계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사마천(기원전 145~90?)의 <사기>는 중국의 정사 24서 중 첫 번째를 장식하는 책이다.
흔히 'CEO가 읽어야할 필독서'나 '세계의 고전', '죽기 전에 꼭 읽어야할 책 100권' 등의 목록에서 빠지는 법이 없지만, 실제로 통독을 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큼 '어렵다'는 선입견이 깔려있는 데다, 실제로 날카롭고 냉혹하기 그지없는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기>와 26년째 사랑에 빠진 이가 있으니, 바로 사기 전문가로 불리는 김영수 작가(54·사학자)다.
그는 <사기>에 나오는 사자성어와 명문장를 골라 '나를 세우는 옛 문장들'(생각연구소)이란 책을 냈다. 도무지 책장을 넘기기가 힘든 <사기>를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만난다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자성어와 재미있는 역사이야기를 통해 어려운 고전과 친숙해질 수 있지 않을까.

지난 7일 오전, 서울 역삼동 삼정호텔에서 '사기경영' 조찬 강연을 마친 김 작가를 만났다. 두 시간 남짓 열강을 한 뒤였지만 의자 등받이에 한번 기대지 않은 채 이야기를 시작한 그는 "사기요? 재밌어요!"라고 한마디로 말한다. 사랑에도 권태가 오기 마련인데 26년간 <사기>와 함께 한 그는 아직도 흥분을 감추지 못한 듯 했다.
"단 한 번도 제 마음은 변한 적이 없어요. 어느 누구와 이런 사랑을 하겠어요? 허허!"
<사기>의 매력이 대체 무엇이관데! 김 작가와 사기의 러브스토리가 궁금해졌다.
그는 1987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고대 한중 관계사를 주제로 석사·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사기>의 '조선열전'을 만났고 그 후 지금껏 <사기>에만 매달렸다. 통독은 네 차례정도 했고, 부분적으로는 수백 번도 넘게 읽었다. 120여 회 이상 중국을 방문해 사마천의 발자취를 더듬고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사마천과 벌어진 2000여 년의 세월을 좁히기 시작했다.
"사기는 읽는 연령대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요. 10대에는 재미난 이야기에 넋을 빼앗기고, 청년시절엔 문체와 기풍에 빠져들고, 중년 이후에는 세상사 이치를 곱씹으며 읽게 되죠. 하지만 누가 언제 읽든 시공을 초월해 느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주옥같은 '고사성어'일 겁니다."
사자성어는 가히 '중국문화의 진수'라 할만하다. 옛 이야기에서 비유적인 내용을 뽑아 네 글자로 함축해 시대상황과 인간심리 등을 표현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글에 담긴 묘미의 한 자락을 사유하는 것 자체로 지적 만족을 안겨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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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사기에 나오는 고사성어들은 도덕적 잠언도 아니고 흔히 말하는 힐링(치유)을 도와주지도 않는다"며 "다만 세상과 인간의 본질을 통찰하게 해 서늘한 이성과 따뜻한 감성을 겸비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자극을 준다"고 설명했다.
<사기>는 무려 52만6500자로 이루어져 있다. 사자성어는 600개에 이른다. 명언이나 격언을 합치면 1200개 문장을 넘을 것이라 했다. 그는 이 중에 190개 문장을 뽑아냈고, 그중 131개 문장을 이번 책에 담았다. 생사, 관조, 활용, 언어, 사로(思路), 유인, 승부 등 7개의 장으로 구분했다. 각 고사성어마다 역사적 배경과 함께 해석을 덧붙였다. 그는 "각 장을 소개한 서문을 먼저 다 읽은 후에 순서에 상관없이 마음이 가는 장을 찾아서 읽어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기>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전 세계에서 '중국'의 입지가 점점 커지면서 서양에서는 중국문화와 한자를 배우기 위해 공부하는 리더들이 늘고 있습니다. 중국이란 나라의 존재감은 '사기'의 존재감과 같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중국의 경제력과 문화수준이 향상될수록 '사기'의 위상도 함께 올라갈 거라 확신합니다. 또 동북공정의 모든 근원이 바로 여기에 들어있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보다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는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자성어나 고사성어의 의미가 중국에서 사용되는 의미와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 속뜻을 제대로 알고 써야지 피상적인 한자 의미만 가지고 중국인들에게 얘기 했다가는 망신을 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다다익선'(多多益善)의 경우 우리는 단순히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주로 쓰지만 실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의 근거가 된 말이라는 것. 이는 <사기>의 '회음후열전'에 나오는 유방과 한신의 대화에서 비롯됐다.
용병의 귀재였던 한신이 유방을 도와 천하를 다툴 때는 부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천하를 통일한 유방이 한신에게 '자네는 얼마나 되는 수하를 이끌 수 있겠나' 물었을 때 '다다익선'이라 답했으니, 유방 입장에서 이처럼 위험한 장수는 차라리 없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 중국과 비즈니스를 하기 위한 자리에서 중국을 상대로 이 말을 함부로 쓴다면 유리할 것이 없을 터.
김 작가의 책은 이처럼 고사성어에 얽힌 이야기를 중심으로 중국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주며, 글로벌 시대에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에 관한 지혜도 얻게 한다. 실용적일뿐 아니라 우리 역사를 바로 공부할 수 있게 하고, 연령에 따라 그때그때 자신의 인생에서 느껴야 할 것들을 찾아보게 한다. 세상과 삶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싶다면, 먼저 이 책을 통해 <사기>와 사랑에 빠질 준비를 해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