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태의 詩가 있는 밥상]성게비빔밥을 못 드셔봤다고요?

[오인태의 詩가 있는 밥상]성게비빔밥을 못 드셔봤다고요?

오인태 시인
2013.06.24 08:00

<16>성게비빔밥과 '미조바다'

[편집자주] "그래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버리지 말게 해 달라(오인태 시인의 페이스북 담벼락 글 재인용)'. 얼굴 모르는 친구들에게 매일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있다. 그는 교사이고 아동문학가이고 시인이다. 그는 본인이 먹는 밥상의 사진과 시, 그리고 그에 대한 단상을 페이스북에 올려 공유하고 있다. 시와 밥상. 얼핏 보면 이들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 있지만 오인태 시인에겐 크게 다르지 않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더불어 삶을 산다는 것. 시 역시 때론 각박하고 따뜻한 우리 삶 우리 이야기다. 시와 함께 하는 '밥상 인문학'이 가능한 이유다. 머니투데이 독자들께도 주 3회 오인태 시인이 차린 밥상을 드린다. 밥상을 마주하고 시를 읽으면서 정치와 경제를 들여다보자.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니 어려울 게 없다.

소설 쓰는 사람을 소설가, 희곡 쓰는 사람을 극작가라고 하는데 유독 시 쓰는 사람만 왜 시인이라고 할까요? 그 까닭이 작품 속 인물과 작품을 쓴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요. 무슨 말이냐 하면, 소설의 경우(1인칭 시점이라 할지라도)는 소설 속의 주인공과 소설을 쓴 작가를 별개로 보는 반면, 시는 시의화자와 시를 쓴 시인을 곧잘 동일화시켜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설 속의 인물은 작가와 전혀 별개로 치지만 시의화자는 시인의 페르소나(탈)로 여기는 거지요.

이게 바로 허구를 본질로 하는 문학 갈래 중에서 시가 가지는 특질입니다. 그래서 시인에게는 더 엄밀한 잣대로 남다른 인격과 사회적 역할을 요구하곤 하는데, 이를테면, ‘시 그대로’, 또는 ‘시처럼’ 살기를 기대하는 거지요. 실제로 시인은 본능적으로 세계의 문제를 자아의 문제로 껴안아 더불어 희로애락하고, 또 그러기를 기꺼이 자처하는 존재들이니 말입니다.

내 시 중에서 가장 많은 오해(?)를 받는 시가 바로 이 '미조바다'인데요. 대개 이런 반응들이지요. “도대체 시 속의 그녀가 누구냐?” “손이라도 한 번 잡아주고 오지 그랬냐.” 따위.

이 시는 전체가 상징으로 된, 즉 미조바다를 의인화한 건데, 이처럼 시의 경우는 시의화자뿐만 아니라 시의 대상조차도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해버리니, 시인은 이래저래 허구와 현실을 주유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거지요.

성게비빔밥 맛난 거야 다 아시지요? 그래도 성게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성게비빔밥을 아예 먹어본 적이 없다고요? 세상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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