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삼겹살양배추말이와 '적'
[편집자주] "그래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버리지 말게 해 달라(오인태 시인의 페이스북 담벼락 글 재인용)'. 얼굴 모르는 친구들에게 매일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있다. 그는 교사이고 아동문학가이고 시인이다. 그는 본인이 먹는 밥상의 사진과 시, 그리고 그에 대한 단상을 페이스북에 올려 공유하고 있다. 시와 밥상. 얼핏 보면 이들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 있지만 오인태 시인에겐 크게 다르지 않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더불어 삶을 산다는 것. 시 역시 때론 각박하고 따뜻한 우리 삶 우리 이야기다. 시와 함께 하는 '밥상 인문학'이 가능한 이유다. 머니투데이 독자들께도 주 3회 오인태 시인이 차린 밥상을 드린다. 밥상을 마주하고 시를 읽으면서 정치와 경제를 들여다보자.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니 어려울 게 없다.

우리는 살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적을 만들까요. 태어나면서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초등학교에서 대학원까지의 학적부와 동창회명부, 향우회, 동호회, 그리고 각종 단체와 계모임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사회활동의 폭이 좁은 사람이라도 최소한 열 손가락을 다 꼽을 정도는 이런저런 적에 이름을 올려두고 있지 싶은데 말입니다.
어디에 적을 둔다는 것은 그 적을 같이 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일이니만큼,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서 친소관계가 엇갈릴 텐데요, 최악의 경우 사뭇 적대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겠지요. 물론 열 사람의 우군보다 한사람이라도 적을 만들지 않으면 좋겠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요. 敵을 만들지 않는 것은 籍을 만들지 않는 일보다도 더 어려운 일일 수 있겠지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정 힘들면 ‘용서’라는 명분으로 마음에서 슬그머니 놓아버리곤 하지만, 한참동안 마음으로 용서하지도, 마음에서 놓아버리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그래도 시간이 흐르니 애도 증도 점점 희미해져 이제 존재감 자체가 없으니, 이런 경우는 놓아버렸다기보다 아예 잊은 것이겠지요?
냉동 삼겹살을 양배추로 말아봤습니다. 이렇게 지금 먹고 있는 건 대부분 냉동실에 저장해둔 것들인데요, 그러고 보니 어시장에 간지 꽤 오래 되었군요. 정부가 나서서 뭔가 대책을 세워줘야 할 텐데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