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태의 詩가 있는 밥상]무엇이라 한들, 무엇도 아니라 한들

[오인태의 詩가 있는 밥상]무엇이라 한들, 무엇도 아니라 한들

오인태 시인
2013.11.20 08:38

<79>시금치국과 가자미구이 그리고 '가을의 시'

[편집자주] "그래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버리지 말게 해 달라(오인태 시인의 페이스북 담벼락 글 재인용)'. 얼굴 모르는 친구들에게 매일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있다. 그는 교사이고 아동문학가이고 시인이다. 그는 본인이 먹는 밥상의 사진과 시, 그리고 그에 대한 단상을 페이스북에 올려 공유하고 있다. 시와 밥상. 얼핏 보면 이들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 있지만 오인태 시인에겐 크게 다르지 않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더불어 삶을 산다는 것. 시 역시 때론 각박하고 따뜻한 우리 삶 우리 이야기다. 시와 함께 하는 '밥상 인문학'이 가능한 이유다. 머니투데이 독자들께도 주 3회 오인태 시인이 차린 밥상을 드린다. 밥상을 마주하고 시를 읽으면서 정치와 경제를 들여다보자.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니 어려울 게 없다.

딱히 어떤 종교와 신을 신봉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신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신을 부정하는 사람을 내심 경계하기조차 하는데요.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고민을 하다보면 어떤 불가항력의 절대성에 대해 경외감을 갖게 되고 절대적 존재 앞에 겸손하게 될 수밖에 없을 텐데 말이지요.

절대적 존재는 대개 신으로 표상되는데, 제 경우엔 어떤 신이든 다 존중하는 입장입니다. 범신론자라고나 할까요. 만약 자신이 신봉하는 신만 절대적인 것으로 고집하게 되면 다른 종교와 신에 대해 배타적이게 되고 이는 애초 종교의 존재바탕의식이랄 수 있는 긍정과 인정과 존중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거지요. 내 안에 신이 있다면 다른 사람 안에도 신이 있는 것이고, 내가 받드는 신을 존중받기를 바란다면 다른 사람이 믿는 신도 존중해야하는 건 당연하니까요.

솔직히 지금 사십대나 오십대 초반의 연령대에 있는 소위, ‘386세대’와 ‘486’세대 가운데 시대의 현실을 방관하지 않고 사회적 존재와 개인적 존재 사이에서 치열한 철학적 고민을 한 사람이라면 유물론에 솔깃해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으려고요. 저 또한 예외는 아니었으니까요.

한때 신을 부정했던 오만, 그것이 인간에 대한 오만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말입니다. 금세 잎이 다 지고 말았지요?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