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한글 상징성" vs "원형 진정성" 팽팽
전문가 발제·국민 숙의로 공론화 시동

광화문 현판에 한글을 병기하는 방안을 놓고 국가 정체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과 문화유산 원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다만 충분한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26일 연세대 백양누리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행정안전부 주관 '모두의 토론회' 광화문 현판 한글 병기 편에서는 전문가 발제와 패널토론, 국민 숙의 토론이 진행됐다. 토론회에는 사전 모집을 통해 선정된 국민 200명이 참여해 전문가 발제를 들은 뒤 조별 토론과 현장 투표를 진행했다.
첫 발제에 나선 이상열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예술정책연구실장은 광화문 현판 논의가 단순한 문자 표기 문제가 아니라 문화유산의 진정성과 국가 정체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라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국민 의견 수렴 결과 찬성 측은 한글의 국가 정체성과 상징성, 전통과 현대의 조화, 외국인의 이해도 향상 등을 강조한 반면 반대 측은 문화유산 원형 보존과 역사성 유지, 국가유산 보존 원칙을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전문가 조사에서도 문화유산 보존과 국가 상징성이라는 두 가치가 핵심 쟁점으로 나타났으며 충분한 공론화와 절차적 정당성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공통적으로 제시됐다고 밝혔다.
이어 발제에 나선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장은 현재 한자 현판은 유지하면서 아래에 한글 현판을 추가 설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박 원장은 "현재의 한자 현판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성은 존중하면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과 미래 세대의 가치를 함께 담자는 것"이라며 "광화문은 국내외 관광객이 가장 먼저 만나는 한국의 얼굴인 만큼 한글 병기는 역사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이어 쓰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김현경 한국전통문화대 국가유산관리학과 교수는 한글의 가치에는 공감하면서도 현판 추가에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김 교수는 "이번 논의는 한글과 한자 가운데 어느 문자가 더 중요한지를 가리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복원된 문화유산에 오늘날의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반영할 것인지의 문제"라며 "현판은 건축물의 중심축과 상징성을 담고 있는 요소인 만큼 새로운 현판을 추가하는 것은 단순한 표기 보완이 아니라 광화문의 형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말했다.

패널토론에서는 국가 정체성과 문화유산 보존을 둘러싼 찬반 논리가 이어졌다. 정재환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는 "광화문은 대한민국 역사·문화의 중심이자 한글의 탄생지"라며 "경복궁은 훈민정음이 창제된 곳이고 광화문은 왕이 백성과 소통하던 공간인 만큼 이제는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과 한글의 가치를 보여줄 때"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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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판은 건물과 달리 교체하거나 여러 개를 함께 걸 수도 있는 대상"이라며 화성행궁과 부석사 등의 사례를 들었다. 이어 "한자 현판을 떼자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두고 한글을 함께 표기하자는 것"이라며 "21세기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과 한글의 가치를 세계인에게 알리는 상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맞서 배웅규 중앙대 도시시스템공학전공 교수는 "문화유산의 진정성과 한글의 상징성은 모두 중요한 가치지만 어느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며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은 문화유산인 만큼 원형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광화문은 문화유산으로 고종 중건 당시 모습을 기준으로 복원이 진행되고 있지만 광화문광장은 시대 변화에 따라 발전하는 상징 공간"이라며 "한글의 가치는 집현전 복원이나 광화문광장 콘텐츠 강화 등을 통해 충분히 알릴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문화유산에 새로운 한글 현판을 추가하는 것은 원형에 새로운 요소를 더하는 것"이라며 "문화유산의 활용은 원형을 지킬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이날 인사말에서 "광화문 현판 한글 병기 문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는 사안"이라며 "결론을 미리 정해놓기보다 서로 다른 생각을 충분히 듣고 토론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