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필진 ‘세월호 참사 잊지 않기 위해’

“아무도 그날의 신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2014년 4월 16일, 거대한 배 한 척이 침몰한 이후 드러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보고 있으면 이성복 시인의 시 한구절이 아프게 파고든다.
300명 넘는 아까운 생명이 한꺼번에 스러져 갔음에도 국가는 그 신음 소리조차 들으려 하지 않고 외면했다. 세상이 병들었다는 증상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음에도 이대로 괜찮으니 ‘가만히 있으라’고 다그칠 뿐이었다.
참사에 대한 진실을 전해 듣지 못한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주저했고 망설였으며 고통스러워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른 척 살 수는 없게 됐다.
“그날 이후 글을 쓰고 싶은 욕망과 상상력이 어딘가로 처박힌 채 회복될 기척이 없다.” 소설가 신경숙은 세월호 참사 이후 ‘글쓰기’의 무력감을 토로했다.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도무지 생업에 집중할 수 없는 사람은 사회 곳곳에서 생겨났다.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의 어두운 뒷모습이 수면 위로 조금씩 떠오를수록 그 숫자는 늘어갔다.
‘눈먼 자들의 국가’는 세월호 참사 이후 계간 ‘문학동네’ 2014년 여름호와 가을호에 게재된 글을 엮은 책이다. 김애란, 김행숙, 김연수, 박민규, 진은영, 황정은, 배명훈, 황종연, 김홍중, 전규찬, 김서영, 홍철기 등 문학인과 학자 12명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자는 뜻을 모아 발간했다. 초판과 2쇄까지 2만 부가 팔리고, 3쇄 1만 부를 추가 제작 중일 만큼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출판사는 보다 많은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책값을 5500원에 책정했다. 저자들은 판매 수익금 전액을 기부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는 다양한 움직임에 쓰는 데 동참할 예정이다.
편집주간 신형철은 “처리와 복구의 대상인 ‘사고’와 달리 ‘사건’은 진실과 관계하는 대면과 응답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는 사고가 아닌 사건이며, 진실에 대해서는 응답을 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한다.
독자들의 PICK!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인간에게는 ‘애도’의 과정이 필요하다. 애도의 과정을 잘 거치고 나면 살아남은 자들은 앞으로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여생은 어그러지고 만다. 얇지만 무거운 이 책은 ‘세월호 사건’ 희생자들을 제대로 애도할 수 있는 진실을 숙연하지만 날카롭게 요구한다.

■ 박민규(소설가) ‘눈먼 자들의 국가’세월호는 애초부터 사고와 사건이라는 두 개의 프레임이 겹쳐진 참사였다. 말인즉슨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이제 이 두 장의 필름을 분리해야 한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 김애란(소설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앞으로 ‘바다’를 볼 때 이제 우리 눈에는 바다 외에 다른 것도 담길 것이다. ‘가만히 있어라’라는 말 속엔 여전히 그늘이 질 것이다. 특정 단어를 쓸 때마다 그 말 아래 깔리는 어둠을 의식하게 될 것이다. 어떤 이는 노트에 세월이란 단어를 쓰려다 말고 시간이나 인생이란 단어로 바꿀 것이다.
■ 김연수(소설가)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해보시오, 테이레시아스여’이성적으로 침착하게 협력하는 한,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이 진실은, 우리가 경제 성장이라는 분칠 속에 감춰둔 한국사회의 민낯일지도 모르겠다. 이 민낯을 마주 대하는 건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 어차피 내가 하는 한, 한국사회는 원래 그런 얼굴이었다.
■ 황정은(소설가) ‘가까스로, 인간’세월은 돌이킬 수 없게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버렸다. 나 역시 그 세계에서 발을 뺄 수가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만들어버렸다. 어른들을 향해서, 당신들은 세계를 왜 이렇게 만들어버렸습니까, 라고 묻는 입장이 더는 가능하지 않게 된 것이다.
■ 배명훈(소설가) ‘누가 답해야 할까?’세월호가 던져준 충격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뭔가 잘못돼 있을 줄 알았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말도 안 되게 망가져 있었을 줄이야.’ 이 나라 민주주의는 이미 저 멀리 떠내려갔고 지금은 그냥 유사민주주의 체제로 접어들었다는 생각까지 했어도 국가의 기본적인 기능조차 수행해내지 못할 정도로 무능해져 있을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 김행숙(시인) ‘질문들’아직은 어디서 날이 밝아온다고 말할 수 없는 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빛을 비추며, 서로서로 빛을 비추며, 죽은 아이들을 찾아야 합니다.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들을 찾아 어둠 속으로 파고들어가야 합니다.
■ 진은영(시인)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우리는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이들을 죽어가도록 내버려두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괴로워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죽은 사람들이 단지 불쌍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죽어가는 긴 시간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이 엉망진창인 시스템을 방치한 우리 자신에 대한 수치심 때문에 몸서리치는 것이다.
■ 황종연(문학평론가) ‘국가재난시대의 민주적 상상력’세월호 침몰은 1980년 광주 학살 이후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 모두에게 충격적이지만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한국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 김홍중(문학평론가) ‘그럼 이제 무얼 부르지?’미래의 피폭자들, 암환자들, 이주노동자들, 탈북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실업자들, 강정에서, 4대강에서, 용산에서, 크레인 위에서, 우리 시대의 구조적 폭력에 절망한 모든 인간들. 배제된 자들, 세월호에서 죽어간, 살아남은, 그 죽음과 생존을 목도한 우리 모두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누군가 부르고 있는 노래. 인생은 금물, 함부로 태어나지는 마.
■ 전규찬(언론학자) ‘영원한 재난상태: 세월호 이후의 시간은 없다’세월호는 익사한 시신뿐만 아니라 허물어진 신자유주의를 함께 수면 위로 노출한다. 신자유주의 자본국가의 야비한 실정, 약육강식의 냉정한 실상을 폭로한다. 전혀 악하지 않았을 선원들로 하여금 지극히 악한 행동을 저지르게 강제하는 비정한 세월호 선체에는 ‘신자유호’라는 타이틀이 딱 어울린다.
■ 김서영(정신분석학자) ‘정신분석적 행위, 그 윤리적 필연을 살아내야 할 시간’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일들은 내가 아는 정신분석 이야기들이 통용되지 않는 세상의 부분들이다. 그 세상에서는 죄지은 자는 벌을 받고, 억울한 이는 원한을 풀고, 왜곡된 질서가 바로잡히는 그 마땅한 서사가 전개되지 않으며, 희생자의 넋이 위로되고, 남은 이들이 상처를 치유받는 그 당연한 이야기도 시작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 홍철기(현대정치철학연구자) ‘세월호 참사로부터 무엇을 보고 들을 것인가?’우리가 지켜본 것은 무능력의 광경이었다. 삼백 명이 넘는 승객이 구조되지 못한 상태에서 손도 써보지 못하고 침몰한 (혹은 침몰하도록 내버려진) 세월호의 비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혹은 아직도 결코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으며 그래야만 하는 현재의 시점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무능력 이외에 다른 말로 묘사할 수 있겠는가?
◇눈먼 자들의 국가=김애란 외 11명 지음. 문학동네 펴냄. 232쪽/ 5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