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vs 알파고] 아마 5단 손종수 시인 관전평 ② "알파고 '괴수·악수·실수…모두 인간의 눈"

피도 눈물도 없는 침묵의 집행자가 바둑수법의 개념을 뒤흔드는 반면 운영으로 인간대표를 또 한 번 압도했다.
3월 10일 오후 1시 광화문 포시즌호텔 서울에서 속개된 세계의 대결, 세계정상의 프로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바둑 ‘알파고’의 두 번째 대결은 첫 대국과는 전혀 다른 격전으로 이어졌다.
변칙과 도발로 알파고의 실력을 가늠하려 했던 1차전의 실패. 이세돌 9단은 가슴에 칼을 꽂는 인내로 참고 견디며 두터운 바둑으로 끝내기에서 승부를 결정지으려 했지만 2차전도 실패했다. 연패를 당한 이세돌 9단은 막판 벼랑에 몰리게 됐다.
이세돌 9단은 2차 대국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였다. 발 빠르게 변화를 추구하는 ‘기풍’을 가진 이세돌은 전혀 다른 취향으로 시작부터 두텁게 판을 짜면서 안정을 추구하는 판짜기로 긴 승부를 예고했다.
반면 알파고는 ‘괴수’를 연발했다. 특히, 안정적인 행마로 차분하게 전개하는 이세돌을 도발이라도 하듯 과감한 소목(알파고의 공식대국에선 처음 나왔다) 포진을 구사하는가 하면, 우하귀 소목정석 중 프로바둑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손 빼기를 시도해 관전자들을 놀라게 했다.
‘반발의 기세의 대명사’ 이세돌은 없었다. 현장해설을 맡은 유창혁 9단은 “(이세돌이) 지나치게 의식해 (알파고의) 이상한 수를 응징하지 못한다”며 불만을 토로할 정도였다.
중반까지의 흐름은 이세돌이 좋았다. 다만, 프로, 아마를 망라한 인간의 눈 기준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알파고의 괴수, 악수, 실수, 이상한 수들이 모두 중반 이후 한 수 이상의 가치를 드러내면서 알파고의 승리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1차전에서 보였던 알파고의 불안한 끝내기도 그 이면의 또 다른 계산이 존재할 수도 있는 가능성으로 해석할 만 하다. 아니. 알파고의 수는 인간의 관념에만 이상하게 비친, 이질적인 수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2차전에선 알파고가 변칙수를 던졌다. 분명 알파고의 착수는 인간의 착수와 달랐다. 초반 13, 15는 어떤 프로바둑에서도 볼 수 없는 수였고 두터운 백의 형태에 어깨를 짚어간 37도 정체가 모호한 수였다. 이 수들이 모두 종반에 한 수 이상의 가치로 제 역할을 했다.
구글의 딥마인드팀은 알파고가 자율 강화학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인간은 두지 않을 수를 선보이는 것은 그 성과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결과도 나쁘지 않다. 만일, 그렇다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바둑수법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대혁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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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 18분, 좌하 쪽 알파고의 선공으로 발생한 승부처의 절충 결과는 흑이 좋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으나 이후의 난전에 얽히고설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유창혁 9단은 “오늘 경기로 봐서는 알파고의 실력을 종잡을 수 없다”고 했으나 승부는 점점 알파고 쪽으로 기울어졌다.
아쉬움은 이세돌다운 경기가 없었다는 점. 이세돌은 “이번에도 참나?”라는 플로어의 평가를 들어야 했다. 이세돌의 기풍이라면 당연히 반발했어야 하는 장면에서도 참고 또 참았다. 알파고가 우상귀에서 젖혔을 때(65수) “설마 저기를 받아주나요?”라는 반문이 나올 정도. 이세돌은 그곳까지도 태연하게 받아줬다.
80의 상변 침입으로 두 번째 승부처를 맞았는데 알파고는 두텁게 품을 넓히는 공수겸용의 수법으로 맞섰다. 프로들이 평가한 81은 최선의 수라기보다 승부수였다. 형세가 다소 불리하다고 판단한 알파고가 이세돌의 의표를 찌른 것. 이세돌이 침입의 ‘뒷맛’을 살릴 여유를 주지 않고 바로 선택을 강요한 수였다. 유 9단은 끊임없이 “이세돌 9단이 너무 안정적으로만 둔다. 인공지능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안 될 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3시 17분, 알파고는 상변에 침입한 백돌을 잡기 위한 총공격에 나섰다. 백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퇴각했는데 때 이른 형세 낙관이었다. 101은 예측할 수 없는 알파고의 괴수였는데 결과를 보면 백 대마를 압박하는 강수였다.

3시 36분, 유 9단이 처음 확신하듯 이세돌의 우세를 말했으나, 중앙연결을 시도한 이세돌의 106, 108에 백의 급소를 찌른 109가 날카로워 장담할 수 없는 형세가 됐다. 유 9단은 “알파고의 착수는 종잡을 수 없는데 중반 이후 날카로운 수들이 나오고 있다. 고수의 깊이가 보인다”며 감탄했다.
중앙 110은 이세돌다운 반격의 한 수. 120, 122이 회심의 연타로 이기면 결정타가 됐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감정이 없는 알파고는 흔들리지 않았다. 중앙에서 두텁게 물러섰는데 이 판단은 정확했다.
129의 날카로운 응수타진부터 이세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국의 흐름과 대국현장의 분위기는 분명 백이 좋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종반으로 접어들수록 박빙으로 변해갔다. 1분 초읽기에 몰린 이세돌은 눈에 띄게 불안한 표정으로 흔들리며 서서히 무너졌다.
145부터 초읽기에 들어간 이세돌은 혼신의 힘으로 버텼으나 끝내 역전은 불가능했다. 5시 10분, 이세돌의 패색이 짙어졌다. 10집 이상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다는 게 검토에 참여한 프로들의 중론. 5시 21분, 이세돌이 돌을 거두었다.
이세돌은 “초반부터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며 “알파고의 약점을 못 찾아 1, 2차전 모두 졌다”고 자평했다. 211수 끝 흑 불계승.
1, 2차전을 끝까지 지켜본 관계자들은 “이제는 마음을 비우고 지든 이기든 팬들을 열광시켰던 가장 이세돌다운 바둑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아쉬움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