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천경자 화백 차녀 김정희 교수 "남을 흉내내지 않던 어머니의 명예를"

"다른 모든 이들의 엄마처럼, 저의 어머니도 같은 분이셨어요. 제게 젖을 주시고 곁에 계셔 주셨던 엄마예요. 입시 때 저와 같이 고민해 주시고. 결혼한다고 하니깐 다른 엄마들처럼 신랑감이 어떤 사람인지 이리저리 뜯어보고 살펴보고…. 자라면서 옥신각신 한 적도 있었지요."
김정희 미국 몽고메리대 교수(62‧여)는 '본인 어머니가 어떤 분이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쉽게 말을 잇지 못하며 먹먹한 목소리로 답했다.
본지는 김 교수가 1957년 무렵 그의 어머니인 '꽃과 여인의 화가', 고(故) 천경자 화백 모습이 함께 찍힌 사진을 단독 입수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민소매 체크 무늬 옷을 입은 김 교수 모친과 그가 사랑한 꽃의 무늬가 담긴 반팔 차림의 김 교수 어린 시절 모습이 함께 실린 흑백 사진이다.
"무엇보다, 솔직하게 사셨던 분이세요. 남을 흉내 내지 않던 분이시지요. 채색화가 비판을 받던 시점에서도 꿋꿋하게 작업을 하시며 나중엔 어머니만의 특별한 세계를 구축했단 말도 들으셨죠. 그런 점을 생각하면 특출난 면이 있으셨지요."
천 화백은 25년 전 '미인도 위작 시비'를 겪으며 한 작가로서 절망감과 좌절을 호소했다.

고인은 1991년 4월 본인 작품으로 전시에 나온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미인도에 대해 '위작'임을 천명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나의 작품이 아니다"라는 천 화백의 외침은 국립현대미술관 감정의뢰를 맡은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의 진작 판정(1991년 4월 11일)으로 묻혔다. 국립현대미술관도 고인 작품이 진작 판정이라는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1991년 4월 12일)했다.
이후 세간에서 잊힌듯했던 천 화백 주장은 지난해 고인의 별세 이후 김 교수의 문제 제기로 재점화했다. 엄마와 딸이 2대에 걸쳐 벌이는 싸움이다. 그 싸움을 응원하는 천 화백의 손주도 있다.
"저는 30대 남매를 자식으로 두고 있어요. '미인도 위작 시비'에 대한 문제 제기를 다시 하기 전 아이들을 모아두고 '엄마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하고 물어봤어요. 큰 아들이 해준 말이 기억나네요. '엄마의 여생을 할머니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데 쓸 것인지, 아니면 평소대로 엄마 일에 열중하며 어쩌면 조금 편한 삶을 살지 결정하세요'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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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지난 4월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비롯한 미술관 관계자 6명을 사자명예훼손·저작권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고발했다. 검찰은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미인도'를 제출받으며 미인도 진위 재검증에 나설 방침이다.
김 교수 측 변호인단은 '미인도'가 1991년 한국화랑협회장이던 고 김창실 선화랑 대표 소장품이던 '장미와 여인'을 본따 그린 위작으로 보고 있다.
'장미와 여인'은 천 화백이 차녀인 김 교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진작 채색화다. 컴퓨터 분석 결과 이 두 그림은 놀랍도록 그 형태와 구도가 유사하다. 이는 늘 새로운 그림을 추구하는 창작자가 아닌 위조범이 그림을 본따 그렸음을 증명한다는 것.
김 교수는 10일 법원에 제기한 친생자확인소송에서 승소했다. 앞서 김 교수는 지난 2월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송을 제기하기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친자확인소속을 먼저 냈다.
법원은 이날 유전자 감식 결과와 고인이 생전에 쓴 자서전 내용 등 김 교수 측이 제시한 근거를 인정했다. 천 화백은 생전에 쓴 자서전에서 첫 남편과 사이에서 1남 1녀를 낳고, 두 번째 남편인 김남중(별세)씨를 만나 김 교수 남매를 낳았다고 썼다. 다만 김남중씨는 당시 법적 부인이 있어 김 교수 남매는 김씨 부부 호적에 올라있었다.
김 교수와 천 화백이 함께 실린 사진들은 현재 60대인 그와 고인 간 인생 여정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본지 취재 결과 국립현대미술관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으로부터 작품을 입수, 재무부, 문화공보부를 거쳐 이관받았다는 과정을 증명하는 사진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미술계 안팎에서 제기된 증빙 자료 부실 의혹에 대해 국립현대미술관은 명확한 해명에 나서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