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윤태용 저작권보호원장
총과 쌀이 힘이 있던 시절, 예술은 가난을 먹고 자랐다. 힘든 삶을 ‘아름다운 소풍’으로 승화시킨 천상병 시인은 평생 생활고에 시달렸고, 황소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이중섭도 종이 살 돈이 없어 담뱃갑 속 은지 위에 그림을 그렸다. 그때는 천재성에 물질적 보상이 따르는 세상 내지는 예술가가 후원에 기대지 않고 당당히 작품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세상이 마치 꿈처럼 요원해 보였었다.
그런데 문화가 힘을 가진 지금은, 불법복제물이 창작 의욕을 꺾고 창작자에게 돌아가야 할 보상을 가로챈다. ‘2018 저작권 보호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불법복제와 저작권 침해로 인한 합법저작물 시장 침해규모가 작년 한 해에만 2조 5645억원에 달하고, 이로 인한 고용 손실이 콘텐츠산업에서만 약 3만명 규모로 분석되었다. 경제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창작자들의 정신적 고통과 미래에 대한 걱정은 더 큰 문제다.
저작권 침해 범죄는 점점 고도화되고 은밀해지고 있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불법복제물을 유통하는 해외사이트가 신속한 대응의 한계지대로 문제가 되고 있다. 국내 단속 강화에 따른 풍선효과로, 해외에 사이트를 개설해 웹툰, 방송 등 불법복제 콘텐츠들을 유통하는 사례가 늘고 피해도 커지고 있는 것이다. 틈새없는 모니터링으로 해당사이트를 적발해 접속차단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차단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2개월로 너무 길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현재 한국저작권보호원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중복심의 기간을 단축해 보호원의 심의만으로 2주 이내에 접속차단하는 내용의 저작권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며, 보호원은 개정안 통과 시 즉시 새로운 심의체제로 대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교묘해지는 지능범죄에 맞서 비트코인 추적솔루션을 도입하는 등 첨단 포렌식 인프라를 갖추고 수사역량을 키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저작권 침해 대응 디지털 포렌식 센터’를 구축하여 국내외 포렌식 관련 정책과 기술 연구를 통한 과학적인 저작권 침해 대응을 추진할 청사진을 마련 중에 있다.
오프라인 상의 저작권 침해 양상 또한 은밀화되고 있다. 특히, 대학가의 강의교재 불법복제 방식이 더욱 은밀해져 출력본이 아닌 PDF 파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가 하면, 파지를 버리는 곳에 복사본을 숨겨놓기도 하고, 대학 강의실을 빌려 새벽에 복사기를 돌리고 제본해서 나눠주는 업소들마저도 있다. 신학기마다 대규모의 단속인원을 투입해 주말근무와 야간근무까지 병행하지만 적발이 쉽지만은 않은 이유다. 보호원 차원에서도 저작권에 대한 학생들의 존중의식 개선을 위해 ‘저작권 보호 리포터즈(대학생 기자단)’를 운영하여 홍보 캠페인을 추진하는 한편, 효율적인 적발·단속을 위한 ‘대학생 감시단’ 제도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저작권 보호의 주체는 보호원만이 아니다. 창작자이자 콘텐츠 소비자인 우리 모두가 주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일상 속 저작권 보호에 동참해야 한다. 정식 음반사이트를 이용하고,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는 등 작은 실천만으로도 충분히 저작권을 지켜낼 수 있다. 하루빨리 건강한 저작권 생태계가 조성되어, 머리와 가슴을 울리는 창작물이 존중받는 문화강국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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