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한미FTA와 진보, 보수 논쟁

[MT시평]한미FTA와 진보, 보수 논쟁

정승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2007.04.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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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벌어지는 한미FTA 논쟁은 이 나라에 만연된 이념적 혼란을 잘 보여준다. 진보적 정치인과 언론은 일제히 한미FTA를 반대하고, 보수적 정치인과 언론은 일제히 한미FTA를 찬성하며 상대를 비난한다. 한미FTA는 어느새 상대방의 색깔을 판가름하는 시금석이 되었다.

 

하지만 만약 1970년대에 중화학 공업화를 추진한 박정희 대통령은 한미FTA를 지지했을까? 아닐 것이다. 당시 정부는 낮은 기술력으로 국제경쟁력이 없던 기업들을 수출주도 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높은 관세장벽과 함께 외국기업에 대한 49% 지분제한 등 다양한 비관세 장벽들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선별적 정책금융과 보조금 지급 등 2중, 3중의 강력한 보호장치로 수출주도 산업들을 육성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모든 보호무역 장치들을 제거하는 한미FTA는 매국적 정책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박정희 대통령은 진보였는가 보수였는가?

 

리카르도의 비교우위론으로 자유무역의 이점을 강조하는 대부분의 경제학자들과 한나라당 및 보수언론은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애써 '자유무역과 자유시장 원칙의 승리'로 치장하기를 즐긴다.

그리고 한국경제의 미래 역시 시장자유주의, 즉 작은 정부와 감세, 전면적 규제완화에 있다고 말하면서 한미FTA 협상 역시 그 내용의 유불리를 신중히 살펴보기도 전에 일단은 그것이 시장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부합된다는 이유로 열렬하게 환영한다.

 

이들 보수 인사들은 박정희에서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이르는 30년간 지속된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의 비결이 정부주도형 성장정책과 대기업 및 중소기업, 그리고 금융업 등에 대한 다양한 보호무역 장치들에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 완전히 잊고 싶어 하는 듯하다.

 

물론 혹자는 "이제 우리는 과거와 달리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었으므로 보호장치들이 필요 없다"면서 한미FTA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일정 정도 타당한 주장이다. IT와 전자,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주력 수출업종에서 우리는 뛰어난 경쟁력을 이미 획득했고 이들 산업들은 한미FTA를 체결해도 별 피해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업종이 대부분 우리의 현재적 비교우위일 뿐 미래의 비교우위는 아니라는 점에 있다. 중국의 맹렬한 추격에 따라 5년 뒤 이들 업종 대부분이 생존을 위협당할 것이다. 한미FTA는 과연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공하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미 사양산업 판정을 받은 섬유산업의 수명을 연장시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의 업종 전환을 지연시킨다.

 

한미FTA는 미래성장산업 육성을 매우 저해한다. 정부는 오래 전부터 우리의 미래는 IT, BT, NT 등 고부가가치 산업의 창출에 있다고 말해왔다. 이 중 우리는 이미 IT전자 분야에서 탁월한 국제경쟁력을 획득했다. 하지만 BT와 NT 분야에서 우리는 선진국에 여전히 10년, 20년 뒤쳐져 있다. 그런데 BT, NT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쟁력을 가진 나라가 미국이다.

그런데도 이번 한미FTA 협상에서 우리는 우리의 정밀기계, 정밀화학 산업을 그나마 보호해온 높은 관세율과 느슨한 지적재산권 체제를 폐기하기로 함으로써 제약과 의료, 정밀의료기계, 정밀 부품소재 등으로 표현되는 BT, NT 산업의 미래를 심각하게 포기해버렸다. 섬유, 전자, 자동차, 철강, 조선 등 현재적 비교우위의 지속(?)을 염원하며 그 대가로 미래적 비교우위의 창출을 교환해버린 것이다.

 

일반론적으로 자유무역론의 근거인 비교우위론에서 비교우위는 '주어진 것'(given)으로 등장할 뿐이다. 비교우위의 역사적 생성과 발전, 소멸의 개념이 없으며 비교우위 창출(create)의 개념도 없고 이를 위한 국가적 개입과 제도 마련의 개념도 없다.

 

자유무역론을 비판하는 보호무역 이론이 반드시 진보 이론은 아니다. 한미FTA 반대와 시장자유주의 반대는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확고한 보수주의자도 과감하게 한미FTA와 시장자유주의를 비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나라에 미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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