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은행이 국민연금기금의 지배구조 개선을 권고했다고 한다. 지배구조가 운용 방향과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기업의 지배구조가 기업가치와 사회적 역할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과 비슷하다.
국민연금기금은 기금운용위원회가 운용한다. 당연직위원과 위촉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위촉위원은 사용자대표, 근로자대표, 지역가입자대표, 관계전문가 등이다. 기금운용위원회는 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의 전문성 보강을 받는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구성이 기금의 투자성과와 관련이 있는가? 관련이 있다면 어떻게 관련이 있으며, 구성을 변경시켜 성과를 더 좋게 할 수 있는가? 아직 이 질문에 답을 낼 수 있을 만큼 국내에서 자료와 연구가 축적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공공 연기금을 보유한 미국의 데이터와 계량경제학적 분석 결과를 조사해 보았다.
우선 기금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성격이 기금의 운용성과와 의결권 행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은 선험적으로 자명하다. 그러면, 운용구조와 투자성과간의 관계에 일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는가?
특히, 우리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정부는 공공 연기금의 운용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용위원들의 성격이 공공적 목적을 의식하는 기금의 운용으로 연결되는지가 연구 과제다. 이에 대한 답은 예스(Yes)다.
관련 연구를 수행한 예일법대의 로마노 교수에 의하면 정부추천위원이나 당연직위원들은 가입자대표나 전문가들보다는 수익의 극대화라는 기금운용 목표에 덜 비중을 두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결과는 주식을 보유한 경영자가 주주가치 경영에 더 민감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위원'들도 기금의 운용 성과에 그들의 명성과 신용, 그리고 정치적 장래가 달려있기 때문에 수익의 극대화에 중점을 두는 것은 사실이지만 연기금의 속성 상 운용 결정과 그 성과에 의한 수익자들의 복지수준 결정은 20년, 30년이라는 장기의 시간적 간격을 가진다.
즉, 인센티브가 즉각적이 아닌 데서 발생하는 긴장 저하 효과가 있다. 기업의 경영 성과가 주가 등의 지표로 단기간 내에 확인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공공 연기금의 운용 실적은 전혀 다른 환경 아래 있다. 매해 운용수익률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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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가 좋은 경우 연금 납입금의 하향 조정이라는 가시적 조치를 통해 정치적 위원들의 공적이 드러날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어야 하므로 인센티브를 감소시킨다. 미국의 경우 공공 연기금 운용위원의 80% 이상이 정치적 위원이라고 한다.
반면, 로마노 교수는 정치적 위원들은 기업지배구조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한다고 보고한다. 미국에서는 그를 통해 스타 정치인이 몇몇 배출 된 모양이다. 통상 민간 펀드매니저들에게는 그런 종류의 인센티브가 없을 뿐 아니라 포트폴리오기업 경영진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해충돌이 문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본다면, 공공 연기금의 정치적 위원들이 기금의 운용 성과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법 하다.
그러나, 기업지배구조에의 적극적 참여나 사회책임투자의 증가는 위원회의 구성보다는 한두 사람의 위원의 성격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통계적 분석이 적절치 않다. 조사 대상 표본의 개수를 늘리고 조사 기간을 길게 하면 어떤 답이 나올까? 답은 정치적 위원의 비중과 기금 운용 성과가 통계적으로 유의한 역의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한두 위원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운동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근로자대표, 지역가입자대표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결론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공공 연기금이 민간 펀드들과는 여러 가지 다른 성격과 조성 배경을 가진다는 점이다. 기업의 목적에 대해서도 정치, 문화적 하부 구조에 따라 답이 달리 나온다. 일반 기업보다 훨씬 장기간의 시야를 가져야 하는 공공 연기금의 운용에는 훨씬 더 강한 정치적 판단이 개입될 수 있고 그것이 꼭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정부는 정치적 위원들의 역할을 보다 공식화된 기구를 통해 수행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 이는 위원들의 '평판위험'을 부각시키므로 현행의 시스템보다 한 단계 발전된 형태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자산운용전문가의 선임을 통해 가입자 대표의 비중을 실질적으로 보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