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양이, 꿀단지, 그리고 할머니

[기고] 고양이, 꿀단지, 그리고 할머니

김학용 국회의원
2009.10.14 07:41

고양이는 흔히 영물(英物)로 불린다. 워낙 똑똑하다보니 간혹 섬뜩한 인상을 주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다. 필자도 어릴 적 할머니가 키우던 고양이를 통해 이를 실감한 적이 있다.

당시 우리 집은 형제상회라는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집에 먹을 게 많다보니 쥐가 늘었고 그래서 고양이를 기르게 된 것같다.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쥐를 잘 잡고 말을 잘 듣는, 할머니와 숙식을 함께하는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한번은 녀석이 새끼 7마리를 낳아 할머니 방에서 함께 기거하게 됐다. 그런데 찬바람이 쌩쌩 부는 추운 겨울날 녀석은 갑자기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어린 새끼들을 한 마리씩 물고 나가 가게 양철 지붕 위에 올려다 놓는 것이었다.

위험하기도 하고 추운 겨울날 새끼들이 얼어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어린 나로서는 지붕 위로 올라갈 수도 없었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할머니께 이 사실을 말씀드렸다. 깜짝 놀라신 할머니는 밖으로 나오셔서 녀석에게 "새끼를 다 얼어 죽이려느냐. 당장 데려오지 못해"하고 큰 소리로 야단을 치셨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놀랍게도 녀석이 할머니의 꾸중에 풀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더니, 잠시 후 새끼들의 목덜미를 물고 한 마리씩 7마리 모두를 차례로 안방으로 데려왔다. 그 광경이 지금도 생생하다. 고양이가 사람 말을 알아듣는 영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케 하는 일이었다. 그러기에 필자는 요즘도 고양이에겐 절대로 해코지 하지 않는다.

모든 이의 할머니가 그러하겠지만 필자에게 할머니는 가슴 저리도록 그립고 너무나 고마운 분이다. 손자가 여럿 있었지만, 할머니는 필자를 각별히 아끼셨다. 어릴 적 인사성이 깍듯하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를 다녀오면 주판 계산에서 배달까지 가게 일을 도맡아 도왔기 때문인 듯싶다.

어느 날 할머니가 필자를 방으로 부르셔서 가보니 할머니는 입을 벌리라고 하시고는 숟가락을 입에 넣어주시는 것이었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달콤한 맛이었다. 꿀이었다. 할머니는 "동생들이 물어보거든 약이라고 해라"하시고는 틈날 때마다 필자를 불러 꿀을 먹이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방의 상아색 법랑꿀단지 한통을 다 비웠다. 꿀단지에 설탕 덩어리가 남아 있던 것으로 보아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가짜 꿀이 아니었나 싶다. 비록 가짜일지라도 잊을 수 없는 세상에서 제일 달콤하고 행복한 맛이었다.

고양이와 꿀단지를 생각할 때마다 할머니가 떠오른다.

아낌없이 사랑을 베푸신 할머니께 손자로서 국회의원이 되어 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생전에 더 잘 모시지 못한 점도 마음에 걸린다. 할머니는 절약 정신이 매우 투철하신 분이라 당신의 안위를 위한 일에는 단돈 1원 1장 쓰시는 일이 없었다. 국회 비서관으로 근무할 시절에 할머니께 경로당에서 자장면 사드시라고 용돈을 드려도 쓰시지 않았고, 식당에다 드시고 싶은 음식을 장부에 달아놓고 마음껏 드시라고 해도 단 한번 드신 적이 없었다.

일찍이 혼자되신 할머니는 그런 근검절약과 솔선수범으로 우리 집안을 일으켜 세우셨다. 비단 할머니의 이야기가 우리 집안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배고팠던 시절 오로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많은 강인한 한국의 여인들은 근현대사(近現代史)의 굴곡 많은 역사의 소용돌이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성(母性)으로 가정을 지켜오셨다.

중국 속담에 "샘물을 마실적에 샘물을 판 사람의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자 OECD회원국으로 누리는 풍요와 번영이 우리 할머니들의 자식사랑, 나라사랑의 마음과 희생 덕분이 아닐까 싶다.

다시 한번 우리의 모든 할머니께 진심어린 감사와 그리움을 전하고 싶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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