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재산은 어디에 투자해도 문제없다..가족회사 출자 등 편법운용 봇물우려

"을지병원이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골프장를 운영하는 신설법인에 2대주주로 참여, 130억원을 출자해준다면 보건복지부 입장은 무엇인가요?"
"을지병원이 환자를 위해 환자전용 대형 헬스클럽을 운영하는 신설법인의 2대주주로 참여해 30억원을 출자해준다면 복지부 입장은 무엇인가요?"
복지부의 답변은 "문제 없다"다.
복지부가 아무래도 의료계에 '큰 일'을 낼 태세다. 각종 세금혜택을 받는 비영리 의료법인이 영리기업의 대주주로 참여해 수십 억원을 출자해도 '무방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엄격히 통제받은 의료법인의 출자제한을 풀어 골프장이든 헬스클럽이든 다 허용한다는 것이다.
복지부가 이같은 '통큰 규제완화' 방침을 밝힌 계기가 다소 엉뚱하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연합뉴스TV를 보도채널사업자로 선정한 후 주주명부를 공개한 결과 을지병원이 4.959%를 출자키로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출자 적정성 논란이 일자 복지부는 "문제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때문에 의료법인의 출자제한이 대거 풀리게 생겼다.
비영리 의료법인의 타 법인 출자가 허용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1800억원에 달하는 돈(을지병원이 밝힌 보통재산)을 보유한 을지병원이 '활발한 투자'에 나설 수 있다.
가령 을지병원 이사장은 미국 뉴저지에 새로 생기는 법인에 100억원을 출자할 수 있게 된다. 복지부가 비영리 병원이라 해도 '보통자산'을 어떻게 운용하든 제약이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 미국법인은 을지병원 이사장 자녀가 친구들과 정보기술(IT)사업을 해보겠다고 설립한 것인데 사장을 맡은 자녀가 월급으로 5000만원씩 가져가게 돼 있다고 해도 복지부는 "(신설법인에 대한) 주식투자는 변동성이 커서 자제하라고 권고할 수 있어도 막지는 못한다. 그것도 지자체가 할 일이지 복지부는 어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밖에 을지병원이 골프장 운영 신설법인에 100억원을, 찜질방 운영법인에 100억원을 출자한다고 해도 복지부는 "보통자산의 운용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다"는 입장이다.
독자들의 PICK!
을지병원이 출자한 골프장과 찜질방 운영회사의 대표이사가 병원 이사장의 부인이라 해도, 그 대표이사가 월급을 얼마 가져가든지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게 복지부의 입장이다.
일반 개인병원들은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복지부가 의료법인의 타 법인 출자를 허용한다면 나도 전환해야겠다"는 병원장이 많다.
비영리 의료법인이 되면 세금혜택은 혜택대로 받고 출자한 돈을 빼낼 수 있는 길도 열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비영리 의료법인은 재산을 법인에 출연하거나 기부할 때 상속세나 증여세를 내지 않고 의료장비나 의료기구 등을 들여놓을 때 부가세도 면세되는 등 각종 세제혜택을 받는다.
이같은 혜택을 받는 비영리 의료법인은 설립자라 해도 수익을 꺼내갈 수 없게 철저히 통제받는다. 은행 예금처럼 예금주 이외에 손댈 수 없는 자산운용방식 이외에 철저히 통제받아왔다. 타 법인 출자는 법을 어기지 않고도 얼마든지 편법적으로 자금 빼내갈 여지가 많기 때문에 허용되지 않았으나 복지부가 이번에 '통 크게' 허용할 판이다.
이동욱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5일 "의료법인이 골프연습장, 찜질방에 출자하면 어찌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의료기관이 그 업을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골프장이든 찜질방이든) 의료법인이 수입을 얻어 의료기관 운영에 사용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정책관은 비영리 의료법인의 타 법인 출자를 전면 허용하는 정책을 밝힌 셈이다.
병원계 관계자는 "을지병원 투자가 진행된다면 의료법인이 지분참여를 통해 제약회사나 의료기기회사 등 관련산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라며 "진료만으로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다양한 방향으로 진로를 모색해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이번 일의 진행상황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경우 해당 업체 제품만 차별적으로 구매하는 불공정거래가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의료법인 이사장이 법인 재산을 가족이나 친인척 명의의 신설법인에 출자, 특수관계인의 배를 불리는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료법인이 출자금을 날리더라도 이사장의 특수관계인은 돈을 벌게 돼 의료법인의 재산을 개인이 빼돌리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이번 보도채널사업자 선정 결과를 그대로 용인한다면 앞으로 의료법인과 같은 비영리법인을 얼마든지 탈법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을지병원의 방송출자를 허용함에 따라 복지부의 투자병원(영리병원)제도에 대한 태도가 바뀔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복지부는 영리병원 도입을 극구 반대해왔다. 영리병원이란 투자자가 배당 등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의료법인의 타 법인 출자가 허용되면 배당방식이 아니더라도 출자방식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셈이어서 사실상 영리병원제도를 도입하는 전초라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