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재벌해체와 순환출자 규제론의 귀환

[기고]재벌해체와 순환출자 규제론의 귀환

김화진 서울대 법대 교수
2012.04.20 07:30

기업지배구조를 연구하는 서구의 주류 학계에서 인류의 영원한 로망 '선량하고 현명한 독재자'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을 보니 이제 기업지배구조 연구도 약 20년의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원점으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잘 만들어놓은 제도의 집행만 과제로 남는다.

반면 국내에서는 10년 전쯤에 나타났다 사라진 순환출자 규제론이 다시 등장했고 대기업의 소유지배구조 문제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중요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캉드쉬 당시 IMF 총재가 내놓은 재벌해체론도 돌아왔다.

누가 사업을 하든,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사업은 계속 확장되어야 하고, 재무적 시너지를 성취하기 위해 사업은 다각화되어야 한다.그러나 투자에 필요한 자금은 언제나 부족하기 마련이고, 그렇다고 남에게 넘겨주기 위해 사업을 하는 사람은 없다. 성장, 재원마련, 지배력 유지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게 해주는 것이 바로 계열사를 통해 신규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따라서 순환출자는 미필적으로 의도된 우연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기업집단을 통한 지배력 확대와 유지를 도와준다. 쉽게 말하면 '급하니까 편리한대로 안전하게' 계열사 자금을 써서 투자하는 것이고, 당초 마스터플랜이 없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지배력을 공고히 해주므로 사후적인 예측에 의해 결과에 대한 의도가 미리 개입된다. 기업집단이 은행을 계열사로 가진다면? 그 결과는 뻔한 것이다. 그래서 금산분리라는 규제원칙이 있다.

그러나 순환출자 규제론은 해당 기업집단이 누구의 지배 하에 있는가가 그 출발점이다. 순환출자 규제는 지배 주체를 염두에 두고 그를 중심으로 한 환상형 고리를 찾아내서 규제하자는 것이다. 즉, 지극히 정치적인 발상이다.

예컨대 순환출자의 출발점에 있는 회사가 KT나 포스코 같은 완전한 전문경영인 지배 회사라면 순환출자 규제론이 나왔을지 의문이다. 개인이나 가족이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기업집단이 순환출자구조를 형성하면 경영권의 사익 추구 위험이 높다고 해서 규제하려는 것이다. 순환출자가 경제적인 효용은 창출하는 바 없이 단순히 지배권 유지와 확장의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되고, 그 결과 소수 주주의 이익을 해치는 것이라면 규제론에 반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순환출자구조의 위험성은 2차적인 것이다. 기업집단이 창출하는 시너지가 1차적인 동기다. 현대차와 현대캐피탈의 콤비가 '신의 영역'인 미국 자동차시장 정복 비결 중 하나였음은 누구나 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기 시작했고 동반성장, 초과이익공유 같은 개념들이 등장해서 각광을 받고 있다. '어떤 소유지배구조를 가져야 기업이 잘 될것인가'의 문제가 '기업이 잘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의 문제로 다시 발전(회귀)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기업이 잘 된다는 것이 기업이 사업의 결과로 단순히 주주들의 경제적 이익을 실현한다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의미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고용창출과 재투자, 협력사와의 상생 등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주주들은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양보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갑자기 기업의 소유지배구조가 이슈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는 오류다. 새로운 이념을 실현하는 것은 기업의 행동에 대한 규제여야 하고, 기업의 소유지배구조에 대한 규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문제 있는 행동이 체질과 체력의 영향을 받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어떤 행동이 걱정되어서 아예 크기를 줄이고 힘을 빼버리자는 전략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소유지배구조를 악용한 불공정거래행위 규제는 공정위에 맡기고 위법한 사익추구행위 규제는 사법부에 맡기면 될 일이다. 산적한 국가적 과제들을 앞에 두고 10년 전으로 돌아가 대기업의 소유지배구조를 다시 논의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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