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여의도 가는 길에 택시로 마포대교를 건너는데 운전기사가 말을 걸었다. "오른쪽에 보이는 섬이 뭔지 아느냐"고. 밤섬 말씀이냐, 답하니 기다렸다는 듯 묻지 않은 역사를 읊었다.
그가 젊었을 적엔 밤섬에 마을도 있었는데 1968년 여의도에 아파트를 짓는다며 밤섬을 폭파해 그 흙으로 제방을 쌓았단다. "그 자리에 몇십년 동안 흙이 쌓여 다시 섬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느냐"며 "가는 세월이 무섭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그 시절엔 희망이 있었지. 서울에서 택시 몰면 집 한칸 장만하고 애들 학교 보냈으니까. 지금 우리 애들한테는 택시 몰라고 못해요. 집은커녕 전셋집도..."
말끝을 흐리는 그의 얼굴을 백미러로 살피니 60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그의 자녀는 아마 30대나 20대 정도 되었을까. 그들이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지금 같은 전세대란에 자력으로 서울에 전셋집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달 서울 주택의 평균 전세금은 1평(3.3㎡)당 900만 원을 돌파했다. 20평짜리 집을 전세로 얻으려면 평균 1억8000만 원은 든단 얘기다. 만약 그의 자녀가 월 평균 187만 원을 받는다는 서울의 법인택시기사가 됐다면 전세금 마련에 8년은 걸릴 것이다. 물론, 동전 하나 안 쓴다는 전제로.
주택보급률 114% 시대, 집값은 정체됐는데 전세는 왜 오를까. 수요자는 자신의 일터에서 가까우면서 자기 소득으로 감당할 수 있는 집을 원하는데, 그런 조건에 가까운 서울·수도권의 전세 물량은 되레 줄어들고 있다. 집값 하락으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공포는 내 집 마련을 피하게 만들었다.
정부 대책 대로 주택 공급을 줄이고 목돈이 안 들도록 전세 담보 대출을 지원하면 집값 하락 공포와 전세대란이 한 번에 사라질까? 원금 손실을 회피하는 젊은 세입자들과 월세 수입을 원하는 은퇴 연령의 주택 보유자의 수요는 그보다 강력해 보인다. 우리보다 앞서 도시 집중화와 고령화, 주택시장 급등락을 겪었던 선진지역에선 정부와 수요자들이 어떤 해법을 만들어냈을까?
2001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앞서 말한 택시기사와 비슷한 연배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국내에서 〈경제 민주화를 말한다〉란 제목으로 번역된 책에서 "나는 협동조합주택에 살고 있다"며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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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일부 문제들은 협동조합들이 수익 극대화를 위주로 하는 기업들로 전환한 결과다. 오늘날에도 농업과 주택 및 여타 분야에서 협동조합과 비영리조직들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닉슨 정부가 금융 보조금을 없애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주택 협동조합 결성을 장려했다. 임대자는 주택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면 집주인처럼 오래 거주하되, 집주인과 달리 집값 하락 공포와 원리금 상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조합이 주택의 소유자이자 대출 상환 주체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정부 지원이 사라지면서 미국의 주택 협동조합은 120만 호, 전체 주택의 1% 미만에서 증가세가 멈췄다. 그러나 다른 선진지역에선 여전히 주택 협동조합이 안정적 주거의 대안으로 꼽힌다. 2012년 국제협동조합연맹이 낸 〈세계의 협동조합주택〉보고서는 전체 주택 중 협동조합주택 비중이 스웨덴은 22%, 노르웨이는 15%, 독일은 5%에 이른다고 밝혔다.
정부 지원이 끊겨도 주택 협동조합이 발전한 지역엔 공통점이 있다. 주택 협동조합이 조합원 대상으로 저축, 지분 투자 등 금융행위를 하도록 허용해 스스로 자금을 조달할 길을 마련한 것이다.
독일은 비거주자 조합원으로부터 투자 유치를 허용한다. 스웨덴은 부모 세대가 주택을 지어 자식 세대에 판매하는 식의 '부모 자녀 개발 모델'을 만들어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임대주택을 지어 공급하느라 직접 예산을 확보하고 주택값 하락을 감내해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수요는 강물과도 같다. 제방을 쌓아 홍수를 막을 순 있어도 강물의 흐름이 만들어낸 섬을 없앨 순 없다. 전세대란을 없애고 싶다면, 주택 협동조합 같은 대안에 돈길을 터주면 어떨까? 택시 운전사도, 노벨경제학자도 부담 없이 살 집을 수요자 스스로 고안해내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