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세종시 2단계 이전, 출·퇴근 동행해 보니…

[르포]세종시 2단계 이전, 출·퇴근 동행해 보니…

최중혁 기자
2013.12.29 14:25

"좋은 아침입니다. 아침공기가 남다른 세종시에서 알려드립니다. 언제와유?"

20여년 교육부 기자실 궂은 일을 돌봐온 '왕언니' 남궁양숙 실장의 애교(?) 섞인 문자가 26일 오전 출입기자들의 휴대폰을 울렸다.

"누님, 기자들 몇 명이나 나왔어요?"

"한 명도 안 왔어. 기자님은 언제 올 거야?"

교육부가 세종시로 이전한 지 사흘째임에도 최근 인근에 집을 구한 N사, S사 소속 두 명의 기자 외에는 아직 아무도 기자실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전언이었다.

말벗이라도 돼 드려야겠다는 의무감에 "내일 갈게요" 답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막상 가려니 눈앞이 캄캄하다. 오전 6시20분 통근버스를 타려면 늦어도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한다. 평소보다 기상 시간이 1시간30분이나 빠르다.

알람을 중복으로 맞춘 후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따뜻한 이불 고치의 유혹을 과감히 떨쳐내고 통근버스로 향하는 길, 새벽 초승달이 유난히 밝았다. 영하 9.3도, 체감온도 영하 15도의 날씨. 해가 뜨려면 2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

광화문 정부중앙청사에서 출발하는 첫 통근버스는 오전6시18분에 서서히 움직였다. 좌석은 3분의 2 정도가 찼다. 금요일 중앙청사발 버스는 모두 4대다. 이렇게 서울과 경기권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모두 97대, 옮겨 나르는 공무원 숫자만 2000명에 달한다.

한남대교를 건너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니 차들이 도로를 꽉 메우고 있었다. 시속 80km 정도의 속도는 내고 있었지만 도로에 빈틈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세종시 때문에 이 시간에 차가 이렇게 많은 건가' 갸우뚱하며 슬쩍 뒤를 돌아보니 모두들 좌석에 몸을 파묻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이게 뭔 생고생이람. 만만한 게 공무원이라더니….'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의 본질은 강제 이주다. 서울 1017만명, 경기 1220만명, 인천 287만명, 수도권에만 2524만명이 오글오글 모여 산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절반이다. '서울공화국'의 폐해는 오래 전부터 심각하게 지적돼 왔지만, 그 누구도 근원적이고 합리적인 해법에 접근하지 못했다.

언 발에 오줌 누듯 대응하다 2002년 대선에서 급기야 극단적인 처방책이 나왔다. 수도 이전. 위헌 등 우여곡절 끝에 행정중심복합도시 조성으로 일단락됐다. 민간을 강제할 수 없으니 만만한 공무원이 동원된 것. 2015년까지 투입되는 직접비용만 6조원이 넘고 간접비용까지 감안하면 수십조 원의 세금이 쏟아부어져야 한다. 너도나도 수도권에 몰려들며 지역균형발전을 외면하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공동 부담하게 됐다.

가족은 해체됐다. 아빠나 엄마는 세종시, 아이들은 서울에, 주말부부가 상당수다. 교육부의 경우 비율이 60%에 달한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국가가 '가정파괴범'을 자처했다.

버스 창에 머리 박기를 몇 번 하고 나니 해가 떠 있다. 기사님이 2동, 3동, 4동에서 내릴 분은 준비를 하라고 안내방송을 하니 2~3명 승객이 두꺼운 외투를 여며 입고 출입문으로 나온다. 시계를 보니 오전 8시 2분. 1시간 44분이 소요됐다. '교육부는 몇 동이지? 내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 사이 버스는 벌써 다음 목적지로 움직인다. '에라 모르겠다' 눌러 앉아 있었더니 다행히 교육부는 종착역에 가까웠다.

교육부, 보건복지부 등 16개 기관의 2단계 입주가 완료됐지만 세종청사 곳곳에는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곳곳에 건축 자재나 폐기물이 쌓여 있고, 건물 외 조경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입주를 한 달여 앞둔 아파트 공사 현장과 흡사했다. 2단계 이주 모습이 이 정도인데 1단계 이주 때는 어땠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었다.

다만 건물에 들어서니 좋은 점도 보였다. 교육부만 한 동에 오순도순 모여 있는 모습은 생소했다. 서울청사에서 교육부는 6층, 7층, 16층, 17층 4개 층을 나눠 써서 타 부서에 가려면 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했다. 하지만 용을 형상화했다는 5층짜리 신 청사에서는 3~5층에 모여 있어 어느 부서에 가든 걸어서 이동이 가능했다. 중앙일보 사옥에 나가 있던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2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임대료가 그만큼 아껴질 것이다.

주변은 허술해도 보안은 철저해서 대변인실에서 인도자가 나와서야 출입이 허락됐다. 세종시에서 지인을 만나면 첫 질문은 "거주하세요? 통근하세요?"다. 거주라는 답을 들으면 "혼자 사세요? 가족이랑 사세요?"가 다음 질문이 된다. 혼자 산다는 말은 공무원 임대주택(원룸)이나 단기숙소에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과는 주말부부, 생이별이다. 통근이라는 답을 들으면 "어디서 타세요?"가 다음 질문이 된다. 수도권 통근버스 출발지는 사당역, 양재역, 과천청사역, 정자역 등 33곳에 달하고 소요 시간도 제각각이다.

"방향 감각이 없어요. 적응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어. 퇴근할 때도 남쪽으로 가야 되는데 북쪽으로 가서 한참을 돌았어. 근처에 식당이 없으니까 삼시 세끼 구내식당에서 먹어요. 사흘 밖에 안 됐는데도 밥 먹기가 힘들어. 신문에서는 꽃뱀 조심하라던데 꽃이고 뱀이고 코빼기도 못 봤어. 그냥 휑해. 허허."

대변인실 직원이 반갑게 맞아주며 건네는 말이다. 서울 거주 기자는 처음 본다며 너스레를 떤다. 3층 기자실을 찾으니 텅텅 비어 있었다. 30분 정도 지나니 세종시 인근으로 주거지를 옮긴 N사, S사 소속 기자가 출근했다. '왕언니' 남궁 실장은 30일 개실을 앞두고 인터넷 연결, 전화 부스 방음공사 등으로 분주했다.

기자실에 노트북을 풀고 3층부터 5층까지 교육부 공무원들을 만나러 돌아다녔다. 서로가 생소한 곳에서 대면하니 너나없이 반가움의 표현이 배가됐다.

"오늘 오후 2시에 장관님 주재로 처음 간부회의가 열리는데 참석률이 저조할 것 같아요. 내년도 예산이 아직 통과가 안 돼서 많이들 국회에 가 있거든요. 중요한 회의나 행사는 아직까지 서울에 많이 있어서 출장 나간 선수들이 많아요."

아니나 다를까 과장급 이상 간부들 중에는 오늘 처음 세종시에 출근했다는 이가 많았다. 장·차관도 첫 출근이었다. 모 간부는 건물도 못 찾고, 사무실도 못 찾아 한참을 헤맸다며 웃었다. 다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랴, 업무에 '펑크'를 내지 않으랴 안간힘이었다.

"그래도 저는 세종시를 좋게 봅니다. 잘 돼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공공기관들이 전국 사방 곳곳에 흩어지고 10년쯤 흐르면 수도권 집중화가 많이 완화돼 있을 겁니다. 새로운 현상들도 생겨난다고 해요. 대구에 내려간 KERIS(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경우 전산업무 특성상 대기업과 협력관계를 많이 맺고 있는데 대구가 너무 멀다며 AS를 안 오려고 한답니다. 어쩔 수없이 지방 중소기업과 계약을 맺게 되는데 이 기업들이 서울 대기업 직원들을 스카웃 해온답니다. 계약된 일을 처리하려면 비싼 인건비를 주고서라도 지방으로 대기업 인재를 데려올 수밖에 없는 거죠. 지방으로 인재가 분산되면 목표했던 바가 이뤄진다고 볼 수 있겠죠."

성삼제 기획조정실장의 얘기다. 큰 틀에서는 동의하면서도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며 KERIS 협력업체 사장의 얘기를 전했다.

"공공기관을 이전할 때 좀 분야별로 묶어서 보냈으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교육 분야만 해도 유관 기관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어요. 지방에 지사를 내려고 해도 어디다 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교육부 산하는 대구, 기재부 산하는 광주 뭐 이런 식으로 유관기관들끼리 묶어서 내려가면 시너지도 나고 협력업체들도 지사를 세우기 쉬울텐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못해요."

커피만 예닐곱 잔을 마시고 노트북을 열며 일을 좀 해볼까 하니 목이 아프고 눈이 따갑다. 안전행정부에서는 충분히 환기를 시켰다고 하는데 그래도 다들 새건물 증후군 증상을 겪고 있다고 한다. 오후 5시30분쯤 퇴근 준비를 하라는 신호가 온다. "통근버스 시간은 6시20분인데 왜 벌써부터 짐을 싸야 하냐" 물으니 "5시50분쯤 나가지 않으면 좋은 자리를 맡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금요일 저녁이라 3시간 도로에서 버틸 각오를 해야 하는데 자리가 불편하면 여간 힘들지 않다는 얘기였다.

"세종시에 와서 좋은 점 중의 하나는 퇴근을 정시에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웬만해선 야근을 못 하니까 낮에 최대한 일을 압축적으로 많이 하고 6시 '땡'하면 퇴근합니다. 다만, 통근자의 경우 새벽 5시에 일어나 보통 밤 8~9시에 들어가니까 피로도는 더 높아요. 별 보고 출근해서 별 보고 퇴근하는 건 똑같지요. 가족이 모두 세종시에 자리를 잡으면 더 편할 것 같기는 한데 중고생 자녀가 있는 집은 그게 쉽지가 않아요. 수십년 살아온 터전을 떠난다는 게…. 집집마다 사정이 다 달라서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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