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혁신'하랬더니 하도급업체 후려친 공기업

[기자수첩]'혁신'하랬더니 하도급업체 후려친 공기업

세종=정진우 기자
2014.11.25 10:40
정진우 기자
정진우 기자

지난 18일 오후 서울 남대문로 한국공정거래조정원. 공정거래위원장에 내정된 정재찬 전 공정위 부위원장(58세)이 공식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공직을 떠나 1년 가까이 쉬었던 탓인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공정위가) 기본에 충실한 시장 파수꾼이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힐땐 단호함이 느껴졌다. 23년 가까이 공정위에 근무하면서 하도급국장, 경쟁국장, 카르텔조사단장 등을 역임한 그의 '불공정행위 척결'에 대한 강한 의지도 읽을 수 있었다.

정 내정자의 이런 의지를 다음 날 기사에 담자. 공기업들로부터 전화가 많이 왔다. 대부분 정 내정자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공기업들의 관심이 온통 공정위에 쏠려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다음달 공정위가 공기업들의 불공정행위 현황과 개선책을 발표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기업들은 그동안 정권이 바뀔때마다 '정권의 입맛'을 경영원칙으로 세우고 열심히 뛰었다. 대통령이 녹색성장을 강조할땐 '녹색경영'을 화두로 내세웠고, 창조경제를 말하면 '창의와 혁신'을 입에 달고 살았다. 공기업의 설립 취지가 '정부 정책이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게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이상할 건 없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공기업들의 '갑질'이 도를 넘어섰다는 것. 기획재정부 등 정부의 공공기관 운영 원칙 어디에도 "공기업은 갑질을 해서라도 국민 편익을 높여라"는 대목이 없음에도 공기업들은 △거래상지위 남용행위 △하도급 업체에 대한 불공정 행위 △계열사 또는 퇴직자 재직회사에 대한 부당지원 등을 서슴치 않았다.

공기업 사정에 따라 공기가 연장됐음에도 공사대금 조정을 거부했거나, 생산완료 물량에 대해 납품을 취소했고, 심지어 하도급 업체에 대해 납품 단가를 후려친 사례도 있었다. 공정위가 법위반 혐의 사항 파악을 위해 26개 공기업 집단을 비롯해 이들과 거래를 하고 있는 수백개 업체들과 가진 간담회, 서면조사, 현장조사를 통해 확인한 내용들이다.

공정위는 이번 조사 대상 공기업에 대한 법위반 혐의가 정리되는 대로 다음달부터 절차에 따라 순차적으로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마침 공정위의 새로운 수장인 정 내정자의 인사청문회도 다음달 4일 열린다. 정 내정자가 청문회를 통과하고 취임하면 공교롭게도 공기업 개혁 작업이 첫 업무가 될 분위기다.

청문회에서도 검증 작업이 이뤄지겠지만, 정 내정자와 공정위가 이번 기회에 공기업들의 갑질 문화를 제대로 뿌리 뽑는다면, 공정위가 그렇게 바라던 '진짜' 시장 파수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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