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무들이 쑥쑥 자라 세종시가 울창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법조인 출신 신임 총리는 수건으로 연신 땀을 훔쳤다. 2년 전 식목일이었다. 못만 덩그러니 파였던 세종시 호수공원에 정홍원 전 총리는 총리실 직원들과 함께 나무를 심었다. 지금 수변공원이 된 그곳이다.
그 때만 해도 그 앞에 그렇게 험한 길이 놓였으리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정 전 총리는 세월호 사건을 포함한 각종 사건사고를 온 몸으로 맞았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는 정부의 무능을 책임지고 사퇴했지만, 후임자의 낙마를 두 차례나 지켜보며 쌌던 짐을 다시 풀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초유의 '유임 총리' 타이틀을 안았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총리 임기를 놓고 인터넷에는 패러디가 난무했다. 불멸의 이순신을 빗댄 '불멸의 정홍원'이 대표적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따온 '총리스텔라', '영원한 말년병장' 등도 유행어가 됐다.
그런 정 전 총리가 정말로 전역했다. 만 2년 동안 해 놓은 일이 적잖다. 신한울원전 건설사업은 정 총리의 의지와 끈기가 없었다면 성사되기 어려웠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역시 보존사(史)에서 총리 정홍원을 빼놓고 얘기하기 어렵다.
하지만 관가엔 '불멸의 정홍원' 사태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한 관료는 "우리나라에서 총리라는 자리가 갖는 한계에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총리가 임명되면 청와대는 으레 '책임총리'라 소개한다. 의전총리가 아닌 책임총리가 돼 달라는 거다. 이 말은 그간 책임총리가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질도 자질이지만 구조의 문제가 크다. 정치구조 상 총리라는 모종은 지명 과정에서부터 흔들리고 뿌리가 상하기 십상이다. 그렇게 자라 '식물총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물은 지명조차 어렵다. 한 관료는 "총리에게 힘이 실리면, 총리자리를 대권후보 인큐베이터로 활용하려 한다는 말들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료는 "총리가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국론이 분열된다는 인식도 문제"라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정 전 총리가 떠나고 이완구 신임 총리가 공관에 짐을 푼다. 정치인 출신 실세총리가 될것이라고들 한다. 국민들은 '충청도 총리' 이상의 뭔가를 원하고 있다. '불멸의 정홍원' 다음은 '책임총리 이완구'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