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은 별명부자다. '재벌 저격수'는 시민사회 운동을 할 때 유명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첫 공정거래위원장이 된 후에는 '다만'이라는 호가 붙었다. 끝까지 들어봐야 진의를 알 수 있는 추가적인 화법 덕분이다.
'다만'은 여러 의미로 쓰였다. "A가 원칙이다. 다만 B라는 측면도 볼 수 있다"는 언급에선 예외적 단서로 활용됐다. "당신 지적에 통감한다. 다만 제 입장은 이렇다"에선 상대를 인정하면서도 원칙을 고수하는 화법으로 쓰였다. 김상조 실장은 공정거래위원회를 2년간 이렇게 이끌었다.
언론 브리핑에서도 '다만'은 곧잘 쓰였지만 지난 21일 공정위를 떠날 때는 조금 달랐다. 위원장 이임식을 마치고 기자실을 찾은 그는 어깨가 무거운 듯 진중하게 말문을 열었다.
떠나는 소회보다 취임을 앞둔 이로써 포부에 무게가 실렸다. 질문을 19개나 받았는데 하나하나 성실히 답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날 김 실장이 '다만'을 한 번밖에 쓰지 않은 것이다. 어떤 문맥이었을까.
"사람 중심 경제를 만든다는 기조는 일관되게 갈 것입니다. 다만 그때그때 경제환경에서 필요한 정책을 보완하고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충분한 유연성을 동시에 갖출 생각입니다."
교과서적이지만 함의가 느껴졌다. 문재인 정부 1기 경제팀은 '프레임의 덫'에 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 경제정책 기조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로 요약되는데 이중 소득주도성장이 줄곧 보수여론의 공격을 받았다.
야당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대표되는 소주성을 물고 늘어졌다. 전임 청와대 정책실장들과 참모들은 방어에만 급급했다. 지켜보던 관료들은 "프레임에 걸려 보폭이 좁아졌다"고 자책했다.
당시 필요했던 게 유연함이다. 인사권자나 김 실장 스스로가 콕 집은 정책실장의 자세는 경제환경에 맞게 우선순위를 조절하는 대응력이다. 병참기지 참모장으로 스스로를 규정한 그는 불필요한 논쟁에 말려들지 않고 야전에 보급을 성공시키겠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