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화장실에서 아기 기저귀 갈고"...아빠 육아휴직의 추억

"남자 화장실에서 아기 기저귀 갈고"...아빠 육아휴직의 추억

세종=김훈남 기자
2021.12.25 09:00

[세종썰록]

[편집자주] [세종썰록]은 머니투데이 기자들이 일반 기사로 다루기 어려운 세종시 관가의 뒷이야기들, 정책의 숨은 의미를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7년 전 이맘때쯤 이제 막 돌을 지난 아들을 돌보겠다면서 부장에게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겉으로야 당연한 권리인 듯 말했지만 속으로는 '사표를 쓰게 되는 것 아닐까'할 정도로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사내에서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쓰는 남자였으니까요. 다행히 육아휴직은 무리없이 받아들여졌고 "내일 일할 사람처럼 휴직하고, 어제 일한 사람처럼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2015년 한 해 동안 육아휴직을 쓰고 복귀했습니다.

통계청이 21일 발표한 '2020년 육아휴직통계'를 보며 그해 겨울이 떠올랐습니다. 지난해 17만명에 달하는 육아휴직자 중 아빠 육아휴직자가 20%를 넘었다는 결과를 보니 제 사례는 이제 "라떼는~"을 찾는 아저씨의 '무용담' 정도의 이야기가 된 것 같은 안도감이 따라옵니다.

추억을 꺼낸 김에 '라떼는' 어땠는지 살펴볼까요.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아빠 육아휴직자는 8220명이었습니다. 전체 육아휴직자 13만6560의 6%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그 시절 대낮에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문화센터에 나가거나, 저녁 재료를 사러 단골가게에 가면 백수 취급을 받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주변엔 이직을 준비하거나 대학원 진학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여럿이었습니다. 근황을 전하며 "하루종일 애만 보고 있다"고 말해도 애를 들쳐 업고 실제로 눈 앞에 나타나기 전까진 쉽게 믿는 이들이 적었습니다.

5년 뒤인 지난해 아빠 육아휴직자는 3만8511명으로 5배 가까이로 불어났습니다. 전체 육아휴직자 중 아빠 비율 역시 2017년 12.8%로 두자릿수를 넘어섰고, 지난해 22.7%로 20%를 돌파했습니다. 주변에도 저처럼 배우자와 육아 바톤터치를 하거나, 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전후해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아빠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아빠 육아휴직 증가는 사회적 인식이 바뀐 것과 동시에 꾸준히 육아휴직 제도가 개선된 결과입니다. 민간 근로자 기준으로 과거 1차례 나눠쓸 수 있던 육아휴직은 지난해 말 이후 2회 분할사용이 가능해졌고 통상임금의 40%, 한달에 최대 100만원까지 지급해온 육아휴직급여는 통상임금의 50%, 최대 120만원으로 올랐습니다. 배우자 중 두번째 육아휴직자에게 초반에 더 얹어주는 휴직급여도 최대 4개월간 250만원으로 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한 쏠림은 우리 사회가 풀어야할 숙제입니다. 지난해 아빠 육아휴직자의 68.6%는 300명이상 근로 사업체에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50~299명 사업장은 15.2% △5~49명 사업장은 12% △4명 이하 사업장은 3.5%에 불과했습니니다. 상대적으로 인력이 많고 제도정비가 잘 된 대기업에 다녀야 아빠 육아휴직을 쓰기 좋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엄마 육아휴직 통계와 출생아 부모 육아휴직 통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OECD(경제개발협력기구)의 당해연도 출생아 100명당 아빠 육아휴직자 수를 보면 2016년 기준 스웨덴은 314.1명에 달했습니다. 이어 △아이슬란드 131명 △노르웨이 96.1명 △포루투갈 87.4 명 △핀란드 50.9명 순으로 아빠 육아휴직자가 많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출생아 100명당 아빠 육아휴직자수는 지난해 2.5명에 그쳤습니다. 스웨덴이 314명에 달하던 2016년의 우리나라는 0.6명에 불과했습니다. 나라별로 육아휴직 대상과 제도가 다르지만 4년 전 기준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육아휴직 사용률이 OECD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 2015년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은 다시 없을 경험이었습니다. 휴직 사흘 만에 몸져 누울 정도로 종일 육아가 고됨을 알았고, 마냥 좋을 것만 같았던 아이와의 시간이 우울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남자 화장실에서 기저귀 교환대 없이 아이 기저귀를 갈고 수유실과 분리되지 않은 육아 휴게실을 보며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여성 육아에 초점을 맞춰 설계돼 있는지도 체감했습니다.

인구 전문가들은 "저출산은 현상이 아니라 결과"라고 지적합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아이를 낳고 키우기 어려운 사회인지 보여주는 지표라는 얘기입니다. 부모가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자녀를 키울 수 있는 사회·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저출산 대책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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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남 기자

안녕하세요. 정치부 김훈남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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