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관계의 훈풍 속에서도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는 타협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었다. 최근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배경엔 한국의 미래 통상 전략인 CP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문제가 얽혀있다.
CPTPP는 관세 인하를 넘어 위생·검역(SPS) 규범까지 포괄하는 고수준 다자 자유무역협정이다. 글로벌 보호무역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대체 수출시장 확보와 통상 다변화를 위해 CPTPP 가입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의장국 역할을 해온 일본은 CPTPP 논의가 시작될 때마다 한국의 후쿠시마 인근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비관세 장벽'으로 지목해 왔다.
문제는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시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부담이다. 한국의 수입금지 조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직후인 2011년, 정부는 일본산 식품 전반에 대한 방사능 검사를 강화했다. 세슘·요오드 등 주요 핵종을 검사했고 이후에는 미량이라도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면 추가 핵종 검사 성적서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규제가 촘촘해졌다.
결정적 분기점은 2013년이다. 당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유출 우려가 다시 커지자 정부는 후쿠시마를 포함한 일본 8개 현 수산물의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특정 품목이 아니라 '지역 단위 전면 금지'라는 강력한 조치였다.
정부는 안전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방사능 수치와 별개로 국민 불안도 결정적 고려 요소로 작용했다. 이때부터 후쿠시마 수산물은 한국 사회에서 정책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손대기 어려운 '금기' 의제가 됐다.
이는 국제 분쟁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2015년 세계무역기구(WTO)에 한국을 제소하며 "과학적 근거 없는 차별적 수입 제한"이라고 주장했다. 2018년 1심 격인 분쟁해결기구패널에서는 한국에 불리한 판단이 나왔고, 당시만 해도 '한국 패소' 전망이 우세했다.
한국은 범정부 대응팀을 꾸려 상소에 나섰고 2019년 상소기구는 패널 판단의 핵심을 뒤집었다. 한국의 수입금지 조치는 유지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사고가 발생한 일본의 환경적 특수성을 고려하면 한국의 조치엔 문제 없다는 판단이다.
한국의 최종 승소 판정으로 후쿠시마 수산물 금지는 국내 여론뿐 아니라 국제 통상 질서에서도 일정한 정당성을 확보한 조치가 됐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논의 대상보단 이미 결론 난 사안으로 관리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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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금지를 주요 협상 의제로 다룰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국면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대한민국 국민의 정서적인 문제와 신뢰의 문제를 해결해야 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수입 금지 해제가) 어렵겠지만, 일본과의 CPTPP 가입을 위한 협조를 얻어내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의제라서 적극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2년 대만이 CPTPP 가입을 추진하며 후쿠시마산 식품 수입 금지를 해제한 전례를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후쿠시마산 수산물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 기본권과 직결된 '먹거리 안전' 등은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다. 기술적 안전성 검토와 별개로 국민이 체감하는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한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