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Korea가 만드는 글로벌 미래]1-⑤ K제조업이 부상한 이유

1948년 2월, 부산항에서 앵도환(櫻桃丸)이라는 이름의 낡은 화물선 한 척이 건어물과 한천을 싣고 홍콩으로 떠났다. 대한민국 최초의 수출선인 앵도환이 홍콩으로 떠난 그해, 한국의 수출실적은 1900만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수출실적은 사상 처음으로 7000억달러를 넘기며 일본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수출 6000억달러에서 7000억달러를 넘어서는 데 걸린 기간은 7년이다. 다소 더딘 속도였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출실적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올해 수출이 9000억달러를 넘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유례를 찾기 힘들게 빠른 증가율이다. 그 배경에는 제조업이 자리 잡고 있다.
제조업은 한국 산업 발전의 모태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며 경공업과 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산업 발전의 역사 속에서 그 중심에는 늘 제조업이 있었다. '한강의 기적'은 한국 제조업의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제조업의 미래는 장밋빛보다는 잿빛에 가까웠다. 다른 제조업 선진국들이 그러했듯이, 경쟁자들의 도전에 직면했고 비용과 임금 문제 등으로 제조업 고도화에 나서야 했다. 약 20년간 제조업 주력산업이 비슷했다는 건 경쟁력이라기보단 해결해야 할 숙제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1년 펴낸 '한국경제 60년사'는 "우리 경제의 근간이 되고 있는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섬유, 전자기기 등 주력산업은 대부분 성장기 후반 또는 성숙기에 접어들어 이 상태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진단은 최소한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유효했다.

변화가 시작된 건 최근이다. 전 세계가 한국 제조업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위상이 달라졌다. 수요가 늘면서 실적이 증가하는 선순환이 반복되는 모습이다. 그 정점에는 '슈퍼 사이클'의 영향을 받은 반도체가 있다.
삼성전자(346,500원 ▲3,500 +1.02%)(57조2000억원)와 SK하이닉스(2,521,000원 ▲139,000 +5.84%)(37조6000억원)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 합은 지난해 전체 코스피 상장사 영업이익(244조7882억원)의 40% 수준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1월 102.7% △2월 160.8% △3월 151.4% △4월 173.5% △5월 169.4% 등 말 그대로 '기록적'이다.
K제조업 부상은 반도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조선, 방산, 전력 인프라 등에서 대체 불가, 병목 등의 표현이 따라붙고 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3월 본인의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주식회사가 쥔 산업의 병목"이라며 "제조업의 지도가 바뀌고 있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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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실장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배하고 있다. LNG(액화천연가스) 선박 시장은 HD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전력 인프라 분야에선 HD현대일렉트릭(1,120,000원 ▲6,000 +0.54%)과 효성중공업(3,855,000원 ▼37,000 -0.95%)이 절대 강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1,224,000원 ▲41,000 +3.47%)와 현대로템(219,000원 ▼7,500 -3.31%)의 방산 분야 경쟁력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한국 제조업이 부상한 이유는 내부보다 외부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AI(인공지능) 시대의 도래와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맞물린 결과로 해석한다. 한국 제조업이 전력이나 데이터센터 등 AI 시대에 필요한 산업에 포진해 있고,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으로 중국에 상대적으로 기회가 덜 갔다는 의미다.
외신들도 이러한 상황에 주목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8일 AI 패권 경쟁과 전 세계 곳곳에 일어나는 전쟁 영향으로 한국이 최대 경제 수혜국으로 급부상했다고 보도했다. 반도체, 조선, 방산 등의 수혜에 따라 세계 경제 승자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영국과 미국, 유럽, 일본 등 전통적인 제조업 강국들은 AI 시대의 혜택을 덜 받았다. 산업 고도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제조업 기반을 다른 나라로 보낸 탓이다. 산업 발전 과정에서 임금이 증가하면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은 뒷순위로 밀리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일본의 경우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의 가치가 올라갔고,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자 외국으로 생산 기지를 옮겼다. 한국도 2000년대 들어서 똑같은 고민을 했고, 일부 제조업의 생산 기반을 옮겼지만 그럼에도 "한국에 남겨둬야 할 건 남겨둬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한국이 주요 선진국과 달리 다양한 제조업 포트폴리오를 유지한 이유다.
AI 시대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다. 중국도 한국처럼 다양한 분야의 제조업 강국으로 도약했다. 만약 기술 패권 경쟁이 펼쳐지지 않았다면 공급망 재편 시기에 중국이 주요 제조업 분야를 지배했을 가능성도 크다. 한국 입장에선 중국과의 경쟁에서 철강, 석유화학 등 경쟁력이 약화된 제조업 분야에 대한 고민도 존재한다.
구자현 KDI 선임연구위원은 "어떤 요인으로든 경제적인 충격이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그때마다 레짐 체인지(체제 변화)가 발생한다"며 "그 변화는 산업에 영향으로 주고 그 중에는 제조업도 꼭 있는데, 변화의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지켜야 하는 산업은 어떤 식으로든 지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